세상이 병들었는데
나 하나쯤 꽃을 앓아도 될 것 같다가
더한 증세가 있을 테니 사치인 것이다
감기몸살도 오해받는 봄날에
잔고가 바닥났을 때 떠오르는 사람
체중이 줄어들 때 걱정되는 사람
아픔도 받아 쥘 만하게 가시 꺾고 주는 사람
약국 앞의 줄서기를 보는 순간 떠오르는 사람
폭우 예보를 듣고 우산을 매만지게 하는
누군가의 그런 사람이 되어
햇살 변두리에 방 얻어 격리되고 싶다
<잊어요> 중
아주 오래전에 '보라'라는 시를 썼다. 장마 지나 한여름 폭염 속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쓴 시.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이 아득함이 육체의 아득함인지 마음의 아득함인지 알 수 없던 그날. 한발 내디디면 끌탕처럼 발목을 삼키고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워 신호를 여럿 보내고 이러다가 한 방울의 눈물처럼 녹아내릴 것 같아 겨우 길을 건넜던. 어느 아득했던 날씨, 아득했던 몸, 아득했던 마음.
왜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오래전 그날을 떠올렸는지.
세상이 커다란 병원처럼 느껴져 벌어진 옷깃을 여미고 목련나무 아래 누워있던 옛 시인도 있었다. 정갈하고 창백한 슬픔도 있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앓으며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축축한 생활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고 눈을 질끈 감으며.
먼 곳에서 서로 그저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