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름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화장실 간다
오줌을 누는데 보이는 건 불룩한 아랫배가 전부
이런 나라도 사랑할 수 있겠니,
대답 대신 쪼르륵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
푸르고 깊은 몸 곳곳에 해변의 모래가 들러붙어서
사무실에까지 왔다 질투는
로맨스 같은 구석이 있다 오늘은
예고편에 불과하고 내일은 동료와 친구와 선후배와 옆자리와 뒷자리와 동명이인과 같은 직군과 비슷한 또래와 노인과 젊은이와 이토록 연안에서 깊이 추잡스럽겠지만 극적이게도
바깥은 평온하다, 그것이 나를 더 미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
<로맨스> 중
출근하면 점심에 뭘 먹을까 고민한다는 말은 반만 농담이다. 나는 오늘 점심으로 커피 한 잔과 시집 한 권을 택한다. 동료와 친구와 선후배와 옆자리와 뒷자리의 스트레스와 혐오와 분노가 나를 적시고, 나에게서 흘러넘친 짜증과 체념과 불안이 그들을 무너뜨린다. 사이좋게 마주 보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촉이 나간 전구가 달린 옛 기억 속 부엌처럼 어둑하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라니. 저 짙은 보랏빛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밥을 한 술 떠 입에 넣고 턱을 움직여 씹고 갈아서 목으로 넘기는 일조차 힘이 들면 위장약을 먹더라도 커피를 마시고 영혼에 불온한 피를 채운다. 그런 거다. 점심시간, 반쯤 왔는데 아직 반이나 남은 시간의 마음이란.
세상의 아빠들이 여기 다 있고, 세상의 모든 아들들도 여기 다 있고, 세상의 모든 월급쟁이들, 세상의 모든 친척들, 세상의 모든 친구들, 그 모든 지질한 마음들이 모여서 웅성거린다. 그의 무능이 나를 때린다고 생각해서 밉다가도 그의 아내와 그의 노모와 그의 딸과 그들이 둘러앉은 어느 식탁 위 촉이 나간 전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린다. 그도 나를 볼 때 그럴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방의 공감이 나를 해치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그를 미워해서 그가 안쓰럽다. 아무리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나의 나쁜 감정은 나에게 쉬이 들키니까.
그런 날들의 점심에는 밥보다는 시가 어울린다. 시 한 술 떠서 꼭꼭 씹으니 푸르고 비릿한 무엇이 혀를 친다. 어느 해변에서 밀려온 모래가 서글딱따글하니 심장을 굴러다닌다. 땀일까, 눈물일까.
흐흐흐, 고개를 숙이고 흘리는 웃음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