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우리의 가슴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당연히 가야 할 길을 갈 것이고 끝에 이르러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즉, '나는 살아내었다!'고 말이다. 그것이 어떤 소망이나 착각이 아니라면, 나도 그런 점에서 내 삶의 시험을 통해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이동생에게 보낸 편지, 슈투트가르트 1800년 10월 초
삶의 절반을 착란 속에 산 시인의 편지는 이렇게나 고결하다. 편지들을 읽는 내내 답답하고 슬펐다. 이상이 너무 높은 이는 세상에 너무 엄격하다. 그러나 그이가 타고난 사랑이 많다면 엄격함은 스스로를 내리치는 채찍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기준은 언제나 맞지 않고 그것을 사랑으로 무마하면서 타협하는 자신이 넌더리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편지에서 내내 양가감정을 읽었다. 사랑을 증명하면서 동시에 사랑에 걸맞지 않은 자신을 웅변하고 그런 스스로를 지겨워하는 어떤 정신의 움직임을. 바람에 휘어지는 계절을 건너면서도 초조해 땀을 흘리는 마음을. 그는 편지에서 종종 여유롭고 평화롭다고 말하였지만 예민한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예민한데다가 총명하기까지 하면 더더욱 그럴 수 없다. 그가 시인이라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사랑하지 않고 분노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의 병은 그의 사랑이 낳은 것. 사랑이 이상과 합쳐지지 못할 때 깊은 사랑은 허방이 되어 발목을 잡는다. 뿌리치기에는 너무 사랑해서 그는 저주받은 나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아름다운 열매들이 맺히고 떨어지기를 수백 년.
그의 뼈는 먼지가 되고 그의 글은 남았다. 나는 쓸쓸한 마음으로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한 문장을 읽는다. 사랑이 깊으면 병이 돼··· 가련한 이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