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호 시집, 글자만 남은 아침

by 별이언니

사는 게 왜 지겨운지 알아? 네 슬픔에 독창성이 없기 때문이지.

<고구마 줄기에 피는 소꿉> 중



창가에 앉아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에도 슬픔은 찾아온다. 해가 구름 속에 숨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 건너편 집의 흰 담장이 창백하게 바랠 때. 어미가 버리고 간 새끼 고양이가 건물의 유리 현관을 앞발로 툭툭 치며 애처롭게 울 때. 지나가는 마을버스의 창문에 흰머리를 기댄 할머니의 옆모습이 햇빛 속으로 사라질 때.​


멀리서 큰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지는데 올려다보면 넋을 잃을 정도로 예쁜 하늘이 펼쳐질 때. 아아, 어느덧 눈이 닿는 모든 것에서 기억을 부르는 나는. ​


슬프다. 당신의 걱정을 부를 필요 없이 당연한 슬픔이, 살아있기 때문에 슬픔이, 생명으로서의 슬픔이 ​


꾸역꾸역 밀려온다. 시인은 목젖을 치고 올라오는 이 슬픔을 어떻게 감수할까. 늑대의 이빨자국처럼 시는 성성한데​


지겨운 슬픔이, 당연한 슬픔이, 살아있어서 기쁘기 때문에 슬픈 일이

도처에 널려있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사랑하기 때문에 ​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