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에세이, 시간강사입니다 배민합니다

by 별이언니

음식점도 손님도 배달 라이더도 모두 '빨리 빨리'를 욕망한다. 그리고 배달 어플은 그 '빨리 빨리'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 이용한다. 배달 도착 예정 시간을 산출하는 AI는 빅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데, 배달 라이더들이 원래 20분 걸리는 길을 15분 만에 가기 시작하면 AI는 그 경로를 이제 15분 코스로 인식한다. 교통 상황과 날씨 등 다양한 변수는 고려하지 않는다. 라이더들은 그렇게 AI가 단축시킨 시간 내에 배달을 완수해야만 한다. 라이더들이 빠르게 달릴수록 AI는 더 짧은 시간 안에 배달하라 명령하고, 결국 라이더들인 더 빨리, 더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 악순환인 것이다.


<딸배를 위한 변명> 중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고 문학박사이며 대학의 시간강사인 글쓴이는 나갈 돈은 많으나 들어오는 돈은 한정적이다 못해 줄어드는 현실적 이유로 배민 라이더를 선택한다. 배달이나 하라고 공부를 그렇게 시켰냐는 어머니의 한탄에 아들은 이렇게 답한다. 공부를 많이 해서 할 일이 이것밖에 없는 거야.​


박사학위를 따고 나니 어느덧 삼십 대 중반. 하지만 학위를 딴다고 해서 모두 전임교수가 되는 꽃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대학 시간강사가 수업 한 시간을 하고 버는 돈은 고작 3만 5천 원. 평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 같은 경우는 고료 대신 쌀이나 원치 않는 문예지 정기구독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작품을 하루에 몇 편씩 찍어낼 수도 없고, 찍어낸다 한들 실어줄 지면이 남아돌지도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글 노동자에게 부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


그중에서도 글쓴이는 배달을 택한다. 고등학교 시절 용돈벌이를 하며 배달 일을 해본 경험도 있는 데다가 오토바이를 다시 탈 수 있다는 로망도 있다. 무엇보다 배달 플랫폼에 의지하는 지금의 배달은 라이더가 일할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써야 할 글이 많거나 강의시간이거나 혹은 낚시를 가거나 멍을 때릴 시간을 챙길 수 있다는 뜻. ​


그렇게 배달 라이더로 길 위에 선 글쓴이에게 오토바이 위에서의 사유가 열린다. 시한폭탄처럼 조여오는 배달시간에 맞춰 도로를 달리며 마주치는 온갖 군상들. 장사가 잘 되는 프랜차이즈며 배달은 뜸하지만 음식 맛에는 자신이 있다는 동네 맛집,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고객과 갓 배달되어온 음식에 환호성을 올리는 사람들, 미로처럼 펼쳐지는 대형 아파트 단지의 동호수며 헤어진 연인과 걸었던 골목, 하천에 내려앉는 노을의 빛깔까지. 배달 라이더이지만 시인이기에 그 모든 풍경에 시 한 구절을 붙이며 글쓴이는 달린다. 콜 하나에 사람살이의 풍경 하나가 덧대어진다.

시인 입네, 박사 입네, 선생 입네 하는 허울은 그에겐 거추장스러운 무엇일 뿐이다. 콜이 쌓이면 그날의 벌이가 넉넉하고 그럼 작품을 쓰거나 공부를 할 여력이 생긴다. 어찌 보면 서글픈 일인데 그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어깨를 으쓱한다. 아직 쓸만한걸, 잘생겼어! ​


그가 배달 라이더가 된 이유는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이며 곧 스스로가 당당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지 못하면서 무엇이 고고하단 말인가. 낮음도 높음도 없는, 밥벌이의 위대함을 몸으로 받아들여 글로 쓰니 그야말로 귀하다. 늦은 밤 일터에서 돌아와 쉬지 않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는 나를 위로한다. 우리의 삶이 곧 시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