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이, 캣스크래치

by 별이언니

오래 기른 손을 간결하게 잘라 내요

이제는 손뼉을 칠 수가 없습니다

소리가 강수량을 초과해요​


손을 놀이터에 묻으러 가는 길

발가락을 입에 문 고양이를 만나

서로의 꼬리를 맞바꾸기로 합니다

덧셈은 잘하는데 뺄셈은 약해서요

흥정하지 않고도 값을 잘 깎다가​


떠내려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눈을 깜빡일 때마다

얼굴 안쪽이 가려워져요

하지만 걱정은 없어요

미리 녹음해 둔 박수 소리가 있으니까​


일기예보에서는 당분간

맑은 날이 없다고 해요


<호우주의보> 중





죽은 사람의 시를 읽으면 자꾸 무언가 먹고 싶다. 죽은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을 때 쓴 시, 맥박이 뛰고 피가 도는 몸 안에서 메아리치던 언어들을 읽다 보면. 이 시집을 읽다가도 그랬다. 빵을 먹었다. ​


빵은 달콤했다. 그래서 안심이 됐다. 빵은 나를 주저앉혔다. 홀린 듯 자꾸 땅에서 떠오르려는 발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시인은 기꺼이 벽에 갇혔는데, 너무 인간다운 식사 같아서 철근도 뜯어내지 않고 고스란히 삼켰는데 나는 손으로도 쉽게 찢을 수 있는 빵을 힘들이지 않고 물어뜯고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겼다.​


언젠가 친애하는 시인이 말했다. 어째서 당신의 시에는 목소리가 없는 거죠?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날 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 근처를 한 시간 넘게 빙빙 돌았다. 내 시에 혀가 돋으면 나는 혀를 잘라버리죠. 반벙어리의 시가 나의 시에요. ​


우리의 시에는 각자의 비명이 있다. 다만 비명의 끝까지 가지 않을 뿐. 끝에 다다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생물로서의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낙하하는 '끝'의 풍경에 닿으면 나는, 시는 어떻게 될까. 그래서 나는 슬픔으로부터 분노로부터 시의 세계로부터 한 발짝 물러난다. 잠금장치가 달린 방아쇠, 감정의, 인식의 무중력 공간. 살아서 시를 계속 쓸 수 있도록. ​


젊고 재능 있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아른아른 비치는 '끝'의 절경을 본 듯도 하다. 부조리의 디스토피아를 뜨겁게 통과한 자가 열어젖힌 장막. 결계 너머의 풍경은 모두가 다르겠지. 시인이 들어 어깨너머로 비춰 보여준 풍경도 시인이 보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은 아마 다를 테지만. ​


시를 읽으며 빵을 먹는다. 배가 불러도 멈추지 못하고. 이 폭식의 애도, 경애심. 살아있는 자가, 남은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어떤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