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육체노동에서 얻은 가장 큰 건 무엇인가
A. 조화로움이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려 놓은 세상과 내 몸이 구현해 내는 세상은 전혀 다르다. 마음은 42.195킬로미터 마라톤도 단박에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면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상에서 허황된 부분을 덜어 낼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힘이 빠진다. 욕심껏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육체노동은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다. 결국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욕심을 덜어 내는 일이다. 해가 지기 전 딱 여기까지만 한다.
<진남현 :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 중
문장 노동자는 뜨끔할 책이다. 문장 노동자야말로 육체의 신성함을 동경하는 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비겁하고 게을러 온갖 핑계를 대며 골방에 틀어박힌다. 아니, 그것이 아닐까. 동경하는 것은 동경하는 것으로 놓아두기 때문에 그는 문장 노동자이다. 구름의 골격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제목만으로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자유가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블루라는 상징과 프리라는 직접적인 언급, 그리고 워커라는 묵직한 울림. 물리적인 측면으로만 본다면 먹이사슬의 아랫자리를 어슬렁거려야 할 인간이 생태계의 정점에 올라 행성을 집어삼키려는 위험분자가 된 것은 물론 상상력의 지분이 크다. 진보하려는 의지를 뒷받침하는 상상력, 세상에 없는 것을 기어이 만들어내는 인간만의 능력 때문에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유기생물체가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일'이라는 하는 말의 울림은 움직이는 근육 위로 맺힌 땀을 연상시킨다. '일'은 신성하기 때문이다. 길쭉하게 튀어나와 자유롭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만들어낸 도구가 인간을 나아가게 했다. 상상력은 동기가 되었으나 실질적인 동력은 역시 육체다.
여섯 명의 인터뷰를 고루 읽었다. 목수, 인테리어 디자이너, 환경공무관, 농사꾼, 현장 정리반 등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다. 물론 이 중에는 완전한 육체노동자가 아닌 이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 현장은 육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고 듣고 판단하고 이윽고 움직이는 일이라고 한다면 비슷한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셈이다. 모니터 앞에서 창백하게 말라가는 유령으로서의 자신을 벗어던지고 햇볕에 그을리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직업에서 오는 장점을 이렇게 꼽았다.
돈 - 특히 건설노동자라면 경력이 쌓이고 실력이 좋을수록 꽤나 높은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보람 -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생산한다. 집, 책상, 벽, 지붕, 쌀, 과일 등
교감 - 사람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비교적 적고, 현장에서 느끼는 생동감은 크다.
자존감 - 철저한 실력 중심의 세계이므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현장에 있다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
오늘 - 그들은 오늘에 집중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눈앞의 세계에 몰입하기 때문에 좋은 의미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정직 - 그들의 현장에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조금만 일해도 바로 들통이 나니까.
반면 몸을 쓰는 일이므로 당연히 부상의 위험이 있다. 조금만 방심해도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주변 사람들까지 휘말리게 할 수 있다. 큰 책임감이 필요하다.
사실 내가 생각했던 자유는 속박되지 않는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주도적으로 선택한다'라는 것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남이 정해준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선택한 인생. 그래서 멋졌다. 번드르르한 이유 없이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후 최선을 다하는 것. 얼마나 담백한 일인가. 또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일인가. 타고나기를 비겁하고 게으르게 타고난 몽상가인 나로서는 부끄러운 정도로 부러운 당당함이다.
앞으로의 세계가 이들에게 좀 더 활짝 열린 사회였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십 대 시절을 왜 가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지도 못한 대학 진학을 위해 소진해버리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언제든 찾아서 하는 일에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이길. 그건 어쩌면 인간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방식으로 진보하는 개체이므로. 문장 노동자가 육체노동을 동경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것 역시 우리가 비틀린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긴 편견이기 때문이다. 문장 노동자는 문장으로, 육체노동자는 땀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의 세계는 구축된다. 우리에겐 각자의 역할이 있다. 이 조화로움이야말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