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얼마 전, 호숫가에서 새를 관찰하는 사람을 만나 그 두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새를 관찰하고, 새를 그리고, 새를 기록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용도를 물었다. 어떤 기관의 연구 자료로 쓴다거나 관찰 일기 같은 블로그를 운영한다거나 책을 준비 중이라는 답변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는 내 질문에 그저 배시시 웃으며 특별한 용도는 없다고 했다. 새를 기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시선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나는 그냥 새를 보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던 그의 말이 내 안에 무엇인가를 흔들었다.
<파리에 처음 왔던 날> 중
이를테면 이 공간과 같은 걸까. 멍하니 생각했다. 어느 날의 일기에 나는 이 블로그를 광장 가장자리에 지어진 밀실이라고 적었다. 그 밀실에는 은밀한 구멍이 하나 있다. 구멍으로 눈부신 햇빛과 은은한 바람이 흘러들어온다. 나는 구멍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무언가를 적고 또 무언가를 읽고 대부분 멍하니 앉아있다. 하지만 먼 시선은 언제나 바깥의 풍경에 가 있다. 낯선 이의 목에 맨 스카프가 바람에 흔들리는 일, 들리지 않는 어떤 말들과 웃음 혹은 찌푸림, 왼쪽으로 치우친 걸음이나 문득 허공에 멈추는 손가락, 모자 아래 굽이치는 머리카락이 빛 속에서 여러 색으로 나눠지는 일 같은 것. 카페의 가장자리에 앉은 여자는 자신의 등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타인의 등을 바라본다. 타인의 등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mon cafe, 소유격을 앞에 붙여 '나만의 카페'라고 근사하게 명명했지만 특정한 가게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불려 나온 카페에는 이야기가, 감정이, 지워진 얼굴이, 그렇게 어떤 시간이 담겨 있다. 물론 커피는 맛있어야 한다.
책의 표지엔 우아한 여자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지만 책 속의 커피 마시는 풍경은 그렇게 우아하지 않다. 두껍지 않은 책을 읽으며 나는 내내 피로에 시달렸다. 문장과 문장 사이 얇은 피로가 떠다녔다. 파리에 있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의 분위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소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청춘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어떤 사랑이,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달려가 카운터에 내려놓는 동전이, 겨울의 바다가, 겉도는 대화가, 폭죽처럼 피어올랐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일시적 열광에 준하는 우정'이 있었다. 그곳은 파리였고 서울이기도 했다. mon cafe, 나만의, 나의 공간. 식사를 할 돈은 없기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손가락에 묻은 물로 탁자 위에 이내 지워질 이름을 쓰다가 기어이 종이 위에 적은 단순한 문장들. 몽 카페.
아주 오래전에 나도 파리에 갔다. 이상하리만치 밤이 짧은 곳. 둥그런 광장 가장자리 어디에서든 쉽게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새끼손가락 한마디를 겨우 담글 수 있는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오래 걸었고 일찍 잠들고 새벽에 일어났다. 침대 위에 앉아있으면 커다란 창문이 가장자리부터 부애졌다. 날이 밝는다는 것은 명징해지는 것이 아니라 되려 흐릿해지는 일이라고, 읽던 책의 갈피에 적었다. 아아, 파리는 청회색이구나, 차갑고 우울해. 그건 파리였을까, 아니면 광대가 불거진 나였을까. 나는 나의 몽 카페를 찾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