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흉터 쿠키

by 별이언니

우린 아주 긴 구멍을 가진 도넛들이었군요​


이대로 마음을 시작할 수 있겠어요?


<도넛 구멍 속의 잠> 중




해가 지면 따뜻한 차가 마시고 싶어지는 계절. 쌀쌀한 공기가 폐로 들어오면 피가 싸늘해지는 기쁨이 몸을 순환한다. 차를 마시며 시를 읽는다. 흰 접시에 가득 담긴 풍성한 상처를, 과즙이 풍부한 언어를, 설탕과 계핏가루가 듬뿍 묻은 마음을.​


시인은 공들여 준비한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창문 모서리에 밤이 걸리면 식탁보를 새로 펴고 빛나는 은식기를 내어놓는다. 뭉근하게 끓인 핏빛 술과 흠집 가득한 감정을. ​


몸을 웅크리고 노래하는 사람처럼 밤은 온다. 우리는 공평하게 지워진다, 서로에게서. 기꺼이 외롭지만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싶은 서로에게서. ​


시인의 표정은 평온하고 식탁 위는 꽃과 열매로 가득하다. 향기로운 즙이 목으로 넘어간다. 이 언어가 너무도 풍부하고 사무쳐서 나는 가만히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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