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그 여자 이름이 나하고 같아

by 별이언니

그는 바깥에 서 있었습니다. 내가 사라지고 있는 안쪽의 풍경이 더 우수하다고 말해준 것은 영국 시인이었죠. 내 안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검은 해변이 가득한데. 검은 돌과 검은 물이 넘쳐나서 버스를 타면 젖은 그림자를 떨어뜨리곤 했었죠. 너는 바깥에서 버스 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조심히 잘 들어가. 아주 작은 빛으로 멀어지면서요. 네가 서 있는 바깥은 그렇게나 따뜻한데,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요. 깊은 곳으로 부는 바람. 나는 노트에 적힌 영국 시인의 시를 지워버렸습니다. 만나면 헤어질 수밖에 없고. 안쪽이 더 좋다는 말은 늘 다정했던 너의 안부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우는 얼굴은 싫어합니다. 네가 아름다운 빛을 흘리며 나와 멀어질 때. 버스를 타고 검은 겨울 속으로 내가 영원히 떠밀려 갈 때. ​

<연인의 안부>




아무리 뛰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네가 빛부심으로 멀어질 때.

어느 해 가을 나는 스카프를 놓쳤다. 느슨하게 두른 스카프 속으로 찬 손이 들어왔다. 스카프는 바람에 휩쓸려 점점 높이 올라갔다. 한 손엔 커피, 다른 손엔 가방을 들고 있던 나는 멍하니 멀어지는 스카프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하염없이 태양에 가까워지는. 언젠가는 녹아 사라질.

사실 뛰고 싶지 않았다. 멀리서 나를 보고 웃고 있던 사람은 복잡하고 미지근한 마음으로 거기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약속시간에 늦었으니까. 나는 모범생처럼 웃으며 뛰었다.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을 향해. 함부로 나를 이름이 아니라 라벨로 부르던, 스스로의 허영심으로 나를 곁에 세워두던 사람을 향해.

오래전 시시하고 간절했던 연애 이야기.

겨울 속으로 버스가 미끄러질 때 빛에 머물러 눈부시게 멀어지는 사람보다

시체처럼 차가운 손일지라도 겨울로 가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캄캄하게 지워지는 사람이 좋겠지.

피곤한 귀를 활짝 열면

당신의 목소리도 나와 함께 캄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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