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온다는 슬픔이
이곳을 낯설게 만들고 있다
<온다는 믿음> 중
태풍에 여자 이름만 붙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아, 떠올렸다. 그런 날들도 있었다.
곧 덜컹거릴 창문을 불안하게 올려다보며, 캄캄하게 구정물을 끼얹으며 아득해지는 하늘을 생각하며, 이불 아래 동그랗게 몸을 말고 기다렸다. 입을 벌리면 송두리째 숨을 채갈 바람을. 폭풍이 지나가는 지붕 아래 누워, 안전한 사방 벽의 수호를 받으며, 폭풍에 들려 날아가는 꿈을 꾸었다. 떨어지는 꽃병, 아기 주먹만 한 빗방울, 두개골을 열면 들킬 감정, 파국.
겨울을 기다리고, 마른 꽃대궁을 상상하고, 성큼성큼 지구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불가역의 봄을 떠올리고, 무언가 끝장날 것 같다는 생각에 서른 번도 더 물을 맞고.
시인은 맑은 슬픔으로 얼굴을 씻지만
곧 들킬 불온, 끝끝내 불안, 손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향하는 찻잔처럼
나는 가만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