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슈퍼 간판엔 야채, 과일, 생선, 담배라고 적혀 있었다 쉰 김치만큼 오래된 밥상을 동그랗게 놓고 밥 먹는 주인 부부가 소리 지르며 다투었다 팔리지 못한 시간이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가득하다 얼음이 된 성에를 탁탁 털어 구구콘을 계산하려는데 부부 싸움 중에도 내게 부드러운 인사를 건넸다
길가에서 노모와 함께 수레를 끌던 아들은 누군가에게
어디 날 한번 찔러 죽여 봐
노모는 끌던 수레를 놓고 아들의 옷가지를 잡아끈다
구구콘이 녹는다
<구구콘> 중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해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길게 선 맛집 바로 옆 식당엔 불빛이 환하고 종업원 몇 분이 TV를 보고 계신다. 모여서 보는 것도 아니고 테이블 여기저기에 떨어져 앉아. 손님이 없으니 어디라도 빈자리다. 백열등 불빛이 하얗게 떠오른 등을 스쳐 지나갔다. 다들 근심이 없을 정도로만 손님이 나눠들어 모두가 평안한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다. 걱정이 심장을 누르는 느낌을 잘 아니까.
풀지 못한 짐 사이에 쓰러져 코를 골며 자는 어머니와 천진하게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새근거리며 자는 별을 바라보다가 펑펑 울었던 밤이 있었다. 세상은 너무 아득하고 나는 너무 무력했다. 아니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마주 걸어오다 똑바로 쳐다보며 욕을 하던 낯선 남자를 떠올렸다. 놀랄 만큼 환하게 웃으며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고 이죽거리며 험한 욕을 뱉었다. 몇 번이나. 잠깐 멍한 사이 그는 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 환한 미소가 오랫동안 남아 나를 괴롭힌다.
근심이, 불안이, 공포가 선반이 넘어지듯 몰려와 심장에 격자무늬를 남길 때, 묵지근한 격통을, 삶이라는 어찌할 수 없음을, 감당해야 할 때.
감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냥 모두가 바보처럼 웃다가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내 앞에 선 사람의 피로한 표정을 공포에 질려 바라보고 싶지 않아서.
그것이 거울임을 아니까. 그이가 나임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