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실리아, 섬에서 부르는 노래

by 별이언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바다는 만조다. 이럴 땐 선상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시를 읽고, 누군가는 드로잉을 하고, 누군가는 차를 마시고, 누군가는 담소를 나누고, 누군가는 토막잠에 취해 있다. 여긴 그 누군가가 주인이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집이 시인을 불렀다고 했다. 사람의 온기가 끊기자 풀과 새와 벌레가 주인이 된, 어쩌면 집이라기보다는 터에 가까운 그곳에 망설임 없이 마음을 내려놓았다. 끌렸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홀렸다고 해야 할까. 담이었던 돌 하나, 기둥이었던 나무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모두 거두어 다시 얽고 쌓아 거기에 시와 차를 담았다. 앞으로는 제주의 바다가 펼쳐지고 계절마다 꽃이 피어나고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시집을 읽으면 여기 차도 파나요? 하며 머뭇거리는 발길이 닿고. 이제 제주 시인의 집에는 시와 차, 그리고 사람이 있다. 은은하지만 오래가는 사람의 연이 그 집터를 집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


집은 시인을 붙잡고 시인은 귀가 밝아 희미한 집의 울음을 들었다. 시가 쌓이면 마음에 피가 돌듯이 거기 시인이 성심으로 담은 시가 집의 혈관을 깨웠다. 있는 듯 없는 듯 가만히 엎드린 것처럼 보이지만 집은 마음이 예민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의자에 윤이 돌고 방 구석구석 불빛이 닿았다. 시인이 애정을 담아 써 내려간 문장들 속에서 나는 되살아난 집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이든 진심으로 사랑하면 전해진다는 것도.

고요가 모자라다 싶으면 문을 닫고 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시인 덕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집이지만 온화하고 부드럽다. 눈썹이 순한 집이 조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인이 불을 끄고 잠을 청하면 허공에 떠돌던 시 한 소절을 붙잡아 한참을 되뇌던 집이 바다에 풀어놓은 문장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시인이 건넨 시를 읽고 마음의 불을 켠 사람들은 또 얼마나. ​


이 책은 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람에 대한 순정으로 나는 읽었다. 사람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일,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일, 사람을 위해 밤새워 아픈 몸을 쓸어내리는 일,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우는 일.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만 그중에 시인은 먼저 시를 쓰고 그리고 시를 나누었다. 섬은 사방이 바다라 귀신도 건너가지 못하고 그리움이 쌓이는 터. 그 터에 지붕을 올리고 꽃그늘 아래 앉아 시를 읽는 일은 그리움과 하나 되는 일이다. 그리움의 등잔에 불씨 한 점을 건네며 또 한 사람이 시인의 집 문을 연다.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전화를 들고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는 시인이 보는 듯 마는 듯 고요히 목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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