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없는 지금, 그들은 또 다른 기도를 하며 살고 있다. 어떤 이는 진상규명을 위해 때마다 피켓을 든다. 진상규명이야말로 치유의 첫걸음이니 그이는 '이웃'의 시작을 다시 해내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이는 이제 막 세상에 온 아기들을 씻기고 먹이며 돌보고 있다. 별처럼 예쁜 아이들의 첫 마중에 정성을 다해야 아이들 앞날이 무탈하다며 지극한 마음을 다한다. 그리고 나는 상담사로 살아가며 마음 아픈 이들을 만난다. 모든 고통이 다르되 그 고통에 경중이 없음을, 그저 곁에 머무는 것이 가장 필요할 때가 있음을 또다시 확인한다. '이웃'에서처럼 나는 고통과 슬픔을 통해 삶을 배우고 있다. 함께했던 모든 이들이 이렇게 각자의 일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출근을 하거나 장을 본다. 집에 돌아온 가족들을 반기고, 누군가를 만나 눈빛을 반짝이고, 서로 마주 보고 또 기대며, 역시 자기도 모를 기도를 쏟아내고 있다. 밥에도 스미고 볕에 말린 행주에도 스미고 누군가의 가슴에도 스미는 기도 말이다. 일상을 일구던 이웃에서처럼 매양 그렇게 말이다.
나는 '이웃'에 단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8월 3일은 한 소녀의 생일이다. 나는 그 소녀의 생일시를 썼다. 시를 쓰는 동안 자면서도 울고 걸으면서도 울고 먹으면서도 울었다. 생일시를 쓴 모든 시인들이 그러했겠지만. 생일시는 별이 된 아이들의 목소리를 불러오는 일. 세상에 없는, 영원히 열일곱 살인 '나'를 만나러 모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마음을 들려주는 일. 안 아플 수가 없었다.
생일시를 보내고 생일모임에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감정을 마주 대하는 일이 낯설고 무섭다. 상상만 해도 몸이 저렸다. 얼마나 다들 슬퍼할까. 얼마나 비통할까. 하지만 왠지 사진과 기억으로 내게 전해진 소녀를 만나고 싶었다.
'이웃'은 신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커다란 마루 같았다. 거기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음식을 차리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벽에 장식을 걸거나 했다. 나는 구석에 구겨졌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생일 모임 동안 사람들은 기억을 데려와 가끔은 웃기도 하고 소리 내 울기도 했다.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한숨소리와 속삭임, 울컥 범람하는 감정들. 그러나 휩쓸리진 않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곳을 흐르는 감정은 거칠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손등을 덮어주는, 아픈 눈을 쓸어주는 손바닥같은 감정이 따라와 엎어지려는, 쓰러지려는 감정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나도 그곳에서 밥은 먹었냐는 질문을 들었다. 먹고 왔다고 대답했던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후회했다. 그때 밥상을 받았더라면, 어렴풋이 느꼈던 '머무르는 감정'을 더 깊이 느꼈을 텐데.
숨을 쉬는 일이 유리조각을 삼키는 것 같고,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오는 생리현상조차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질 때. 도무지 삶이 보이지가 않을 때. 캄캄한 절망 속에서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고 어떤 손길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통 속의 사람들에겐 '치유'가 어떻게 닿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모든 게 상처가 될 것 같아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골방으로 숨어들었다는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돕고는 싶지만 혹시나 나의 도움이 더 아플까 봐 허둥지둥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그래서 '이웃'은 말없이 밥상을 차려줬나 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음새가 정갈하고, 씹지 않아도 순하게 넘어가고, 부대끼지 않는 음식들을 차려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짐작도 되지만 밥상을 직접 차려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대단하다. 코가 빠져도 점점 넓어져도 기계적으로 바늘을 놀리며 뜨개질을 하는 엄마들 옆에서 묵묵히 함께 뜨개질을 하는 이는 또 어떠한지. 그건 당신의 고통을 내가 차마 안다고는 못하여도 곁에 머무르고 있다는 신호다. 여기 당신의 '이웃'이 있다는, 그러니 안심하라는, 조용한 신호.
이 책을 읽으며, 책에 담긴 이웃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안심했다. 누군가의 슬픔에 함부로 난입하거나 형편을 헤아리지 않고 일방적인 위로와 도움을 퍼붓는 세태 속에서도 우리 이웃들은 여전히 공감하고 머무르고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베풂이 아닌 나눔, 동정이 아닌 번짐. 이웃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번지고 스며들었다. 이웃은 이제 문을 닫았지만 이웃의 사람들은 그 마루에서 함께 나눠먹던 밥의 힘으로 두루 아픈 세상의 곁이 된다.
캄캄한 바다에서 이름을 인양하는 일은 이제 세월호만의 일은 아니게 되어버렸다. 슬프게도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서, 제빵공장의 기계 속에서, 무관심과 차별로 내몰리고 상처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웃이 필요하다. 묵묵히 함께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밥은 먹었어요? 심상하게 하지만 정성을 다해 묻는 마음이. 우리는 우리 모두의 이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