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산 자들

by 별이언니

음악의 가격이 10년 사이에 100배, 어쩌면 175만 배 싸진 것은 받아들이겠습니다. 상품의 가격은 판매자의 노동이 아니라 구매자의 주관적 효용과 공급량, 보완재와 대체재의 가격에 달려 있다고 하니까요. 저는 다른게 이해가 안 갑니다. 음악이 그렇게 싸져서 모든 사람이 거의 공짜로 음악을 즐기게 됐는데 사람들이 음악으로부터 얻는 효용은 얼마나 늘어났나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그 10년 사이에 175만 배나 100배, 아니 열 배라도 더 행복해졌나요? 오히려 반대 아닌가요? 사람들은 이제 음악을 공기처럼, 심지어 어떤 때는 공해처럼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캐럴이 듣기 싫어 괴롭다고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잔잔한 음악을 엘리베이터 뮤직이라며 조롱합니다. 음악은 이제 침묵보다도 더 값싼 것이 되었습니다.

<음악의 가격> 중



'산 자들'은 과연 산 자들일까. 산 자와 죽은 자를 정의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산 과 자들 사이의 한 칸의 띄어 씀을 오래 쳐다봤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호랑이보다 포도청보다 심지어 죽음보다 무섭다는 그 구멍에서 자욱하게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알바생, 대기발령자, 오늘의 적이 된 어제의 동료들, 소상공인, 철거민, 취준생, 택배기사와 서비스센터 기사와 사장과 팀장과 본사와 지사와 나와 아내와 그 모든 촘촘하게 겹친 갑과 을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간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얼굴들이다. 표정이 그려지지만 표정을 떠올릴 수 없다. 울 듯 말 듯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어찌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마주 보다가 돌아서는 나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흥건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막연한 얼굴에 고개를 숙인다. 울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지금 여기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는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먹고살기 위해 우리는 과연 진정한 '산 자들'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살펴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끄덕이기에는 나 역시 그들에 속한 자이기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발이 걸려 오래 머물렀다. 내 목구멍에서도 피비린내가 난다. 나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살아있으되 '산 자들'이다. 도미노처럼 겹쳐져서 포개진 을과 을과 을과 을 사이에도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처럼 잔인한 것이 있을까. 누구도 '산 자들'에서 열외일 수 없다. 이 작업이 소중하고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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