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성, 좋아서

by 별이언니

" 한 달 동안 네 그루의 나무 사이에서 살았다. 넷이란 숫자엔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나무니까. 3월의 나무는 웃음과 웃음 사이의 짧은 휴지 같아서 나는 혼자만 알고 있는 재미난 이야기를 가진 사람처럼 즐거웠다. 아침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곤 처음이었지 아마. 그렇게 며칠 지각을 했다. 놀랍게도 그 시간에 나를 행복하게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GQ>의 일원이라는 점이었다. 지각을 해도 아주 조금만 눈치 주는 이 따뜻하고 서정적인 사람들과 일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어떤 나무 앞에선 멍하지 서서 옆차기 포즈를 취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빈 택시가 느리게 지나갔다. 아침 열 시의 도로는 한산했으니까. 기사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우리는 짧은 순간 웃고 목을 숙여 인사했다. 아침과 그 거리와 이 시간들이 좋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오후 잠에서 깼을 때 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매일 보는 사람이었는데 느닷없이 왜 그랬을까? 봄이니까. 나는 조금 슬퍼도 괜찮았다. 그리고 다시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걷다가 모든 감정이 삶의 일부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사실은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죽어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울어도 세상의 3월은 여전히 아름다울 거라는 사실도. 그 순간 나는 3월의 나무였다. "

<좋아해 아주 많이> 중



자기를 표현하는 목소리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겸손이 미덕인 나라에서 스스로를 미남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사람은 신기하다. 그사람은 뛰는 것을 좋아하고 자주 울고 사람들을 만나고 시를 쓴다. 시인이자 잡지에디터인 이우성이 만난 사람들, 이 책을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를 제목으로 올려두었다. 좋아서.

하루의 대부분을 좋아하지 않는 일들을 하며 보내는 우리들에게


좋아서 글을 쓰고 좋아서 사람들을 만났다고, 과정은 그렇지 않았을지 몰라도 울면서 밤을 새거나 아버지와 다투고 냉장고 문을 머리로 들이받을지라도 미남이지만 스스로의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주 울고 그럼에도 계속 시를 쓰고, 십년을 시를 쓰고, 0.5 마일마다 화장실을 가도 계속 뛰고, 걸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묵묵히 견디면서 거기서 만난 풍경에서 결국 좋아할 이유를 찾는 사람. 신기하다.


중학생이 되고 싶은 엄마가 어째서 예쁜 꽃들이 모이면 집합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시면서도 끝끝내 대학에 들어가시고 소설을 쓰겠다고 하시는 것을 보면 유전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 그런 유전은 축복이 아닐까 싶다. 그도 그렇지 않은가. 좋아서 그래, 좋아해,라는 단순한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그 어려움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오는 것이라 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하지만 좋아해, 라고 말하면 단순하고 범박한 기쁨이 몰려온다. 구체적이지 않아서 세상을 꽉 채울 수 있는, 평범한 기쁨이.


그러니 이 십 년의 기록을 오늘 그리고 내일에 데려가도 되겠지. 운동화 끈을 조이고 한 걸음을 내딛는 거다. 서툴고 느리지만 계속


꾸준히.


그것만이 인생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