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것은 함부로 버리는 게 아니야
<G> 중
모자가 되거나 오뚝이가 되거나 가이드북을 지키지 못해 눈꺼풀을 잃는 절망은 얼마나 깊을까. 명랑한 웃음소리는 텅 비어 있어서 더 잘 들린다. 어느 날 모두가 노라고 대답한다면 접속은 끊어지지 않을까.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보다 나는 기유의 각도가 근심스러웠다. 초코였다가 치즈가 되고 다시 초코가 되어야 하는 형편이 숨 막혔다. 성실하고 협업을 잘하며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건물을 나와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부러진 손톱을 어깨너머로 던지고 싶었다. 매끄럽게 자르진 못했어도 좀 봐주지 않겠어?라고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보험이라던가 효율이라던가 1/11로 나눠야 하는 수도세라던가 그런 모든 것들이 질서정연한 군홧발 소리를 내며 쳐들어오는 날이면.
이런 날들의 끝에는 결국 굳은 앞발이 쓰레기봉투를 밀어내는 날이 온다. 싸구려 종이꽃으로 치장하고 너머로 건너가도 결국 등 뒤의 문을 여는 거다. 미련은 그라인더에 남은 커피 몇 알이거나 잃어버린 상품권 같은 것.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사소하지만 철길로 등을 밀리는 무게를 질질 끌며 오늘도 계속?이라는 질문 앞에 막막하다. 누군가는 내일은 선택하고 안도하며 나도 따라간다. 결정적이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창틀에 먼지가 쌓이듯 희박하고 미약한 존재의 불확정성이 곧 절망이고,
살아간다는 당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