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왔다
얼마 전 벌목한 숲에서 온 듯하다
저 숲에는 무덤도 몇 들어 있다
햇살이 숲의 서랍을 열면
무덤과 꽃나무와 짐승의 인기척이 환하다
나비가 온 숲은 보이지 않는 육체를 숨기고 있다
나비는 그중 일부일 것이다
나비가 앉은 물받이와 그 부속들은
속세의 성격을 닮아 딱딱하고 내성적이다
나비는 방금 국경을 넘어
딱딱하고 내성적인 나라에 입국했다
<나비 글씨체> 중
차보다 맹물이 좋고 소란보다 고요가 좋고 가끔은 체온도 허기도 거북하다. 펄펄 끓는 시는 여기 있는데 손가락으로 쓸면 매끄럽게 미끄러질 뿐이다.
그것이 시가 아름다운 이유일지도 모른다. 숨을 멈추고 쓸어보아도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매끈함. 시의 육체란 그렇다. 허방에 발목을 잡히고 요철에 손이 베이는 파란만장인데도.
나는 욕망이 낯설다. 멀리 두고 얇게 펄럭이고 싶다. 바람에 떠밀려 손가락이 책장을 넘기듯. 방수가공된 껍질 속에서 무언가 끓고 있다. 못 본 척, 모르는 척하는 동안 한 세월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