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호, 소설의 쓸모

by 별이언니

그런데 이것은 어찌 보면 지금까지 오해를 받아온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가장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우리가 오해해온 그 유명한 이론 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일부 우생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이 유효함을 증명하기 위해 다윈의 이론에 덧붙인 해석이지만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와 달리 요즘 가장 힘을 받고 있는 이론은 바로 '서로 협력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는 이론이다. 비단 이론에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인류의 본질, 생명의 본질을 설명하려고 한 이론 중 가장 탁월하며 유효한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를 경쟁의 사다리 밖으로 밀어내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우리에게 산적한 문제들을 풀 수 없음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으니까. 타인의 고통과 비극을 외면하다가 언젠가는 그것이 나의 고통과 비극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있으니까


<사나운 왕국에서의 양자택일> 중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설을 읽는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나를 걱정했다. 책에서 그만 나와, 현실을 살아야지. 침침한 눈을 힘껏 감았다 뜨며 나도 나를 걱정했다. 이야기 속에 살면서 나는 어느덧 묽어지고 옅어진 것은 아닐까 염려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이야기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나는 책을 펼쳤다. 선량하지만 편협한 사람들이 숨막혔다. 다르다는 것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났다고는 해도 인간의 한 생은 길어야 백 년 남짓이다. 삶의 모양은 복잡하고 지난하다. 몇몇 모험가들이나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을 제외하면 비슷한 삶의 루틴을 따라 살아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숨 한 번 내쉬는 걸로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팍팍하다. 누군가에게 오래 눈을 주거나 깊이 대화할 시간이 없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서로를 얼마나 지극하게 바라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세계는 폭력이 흘러넘친다. 절대 단순하지 않은 감정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기에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다. 섬세하게 살펴도 잃어버리는데 우리는 빠르게 지나치느라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놓친다. 당연히 불안하다. 불안함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고 불안을 잊기 위해 쾌락을 찾는다. 인간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옹이를 가진 나무인데 가지 몇 개만 하늘로 뻗어올린다. 잃어버린 감각들이 질펀한 잠과 꿈에서 환상통을 앓으며 공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이야기 하나가 탄생하려면 수천 개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 하나를 읽으면 수만 명의 영혼과 대화할 수 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지만 미처 만나지 못해 알 수 없었던 이들을 이야기 속에서 만나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껍데기뿐인 공감이 아닌, 어렵고 흔들리지만 다가가려고 하는 진실한 공감이 싹튼다. 나의 답이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알아서 느리지만 신중하다. 그런 사람은 앉았다 일어서다가 혹시 먼지가 일어 꽃잎이 다쳤을까 염려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할머니 말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경제적으로 크게 부유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이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옮긴 사람이 가난할 리는 없다. 마음엔 맑은 물이 넘치고 눈빛은 정갈하고 깊을 것이다. 정답으로 사람과 세상을 재지 않고 먼저 귀를 열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건 오랜 세월 환희에 차 책장을 넘긴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예술에 쓸모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 영혼의 공감 능력을 키우는 일. 그런 사람들만 사는 세상엔 폭력과 편견도 없다. 그야말로 우리가 오래 꿈꾸던 지상낙원이다.

그러니 예술만큼 쓸모 있는 것이 또 있으랴. 소설의 쓸모라니, 가슴 두근거리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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