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져야 끌림이 생깁니다 달이나 원 없이 밝도록 확 어두워져 버리고 싶은 밤 누군가 내 뼈에 지우개와 심을 달아 줍니다 시월에 스며든 칼을 견딥니다
연필 끝에 달을 달아
그대 생각 아껴 가며 지우고 쓰겠습니다
답장을 보내도 괜찮습니다
연필 끝에 달을 달아
( )다
<끌리기 좋은 간격> 중
가난한 말을 생각했다. 가난한 것들의 운명이 그렇듯 가난한 말도 목이 마를까. 달려가 손을 뻗을 풍경이 있다고 아직도 믿을까. 냉소적이지 않아서 더 슬프게
진심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가난한 말은 달려갈 힘이 없어서 엎드려 있을지도 몰라. 무정하게 계속 작아지고 닳고 약해질지도. 그러나 마음은 꺼지지 않아서, 눈꺼풀 속에서도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서
마른 흙의 내음, 달라붙은 땀 내음, 불에 탄 머리카락 냄새가 난다.
그러나 뭘까. 그런 갈증 속에서 갈고 갈아 뾰족해진 뼈 끝에 지우개와 심을 다는 일은. 스스로 연필이 되기까지 했는데 아껴가며 쓰는 일은. 지우며 더듬는 일은.
괄호 안에 긴 여백이 되는 일은.
아직도 여기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가득한데
나는 가지고 있던 마지막 물을 쏟는다. 먼지 하나 가라앉지 않는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