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등에 새처럼 하얀 날개를 달아주세요. 돈이나 명예 같은 건 필요 없지만 날개가 갖고 싶어요.
노래가 끝나자 사회자가 말한다. 우리나라처럼 이런저런 지망생이 많고, 또 그 지망생들의 수준이 높은 나라가 없는 것 같다고. 소설 속 장면이지만 왠지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생생해서 소름이 돋았다. 며칠 전 어색한 술자리에서 누군가 열정을 찬미하며 술잔을 들었다. 마주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요즘 시대에 열정이라뇨.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 여기에서도 열정은 잘 팔리는 품목이다. 너무 베스트셀러라 열정이 가진 원래의 광채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심지어 세상은 열정의 성격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이런 열정은 좋다,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열정은 글쎄, 그걸 열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며 함부로 평가한다.
언젠가 나는 덕후에 대한 산문을 쓰며 덕후는 평화주의자라고 적었다. 덕심처럼 순수한 것이 있을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오로지 사랑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덕후다. 가끔은 덕심이 한 인간을 구원하기도 한다. 인생의 가장 어려운 시절을 손잡고 함께 건너는 일, 아마 대부분의 덕후들이 고개를 끄덕이리라. 눈앞이 캄캄하고 스스로조차 믿을 수 없을 때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울게 하는 하나의 현상을 좇다 보니 지옥 같던 마음도 조금씩 되살아나게 되었다고.
고백하자면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왜 종현이 에반게리온 월드 스탬프 랠리를 완주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제목에 <열광금지>라는 말을 붙였는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종현은 열광금지를 강요하는 사회에 반하여 제목을 붙였다고 했으나 나는 다르게 느꼈다. 사회는 쉽게 열광하는 자들의 천국이다. 쉬운 열광은 쉽게 사라진다. 열광은 마치 사회현상처럼 느껴져서 덕후인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굳이 열광을 붙이자면 우리의 마음은 조용한 열광이라고나 할까. 진득하게 오래도록 바라보다 보면 어느덧 여섯 번째 손가락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인생의 일부가 되는 일에 열광이라는 단어는 너무 쉽지 않은가. 랠리를 완성하면 숨은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니,
등 뒤의 세상을 잊지 않아도 나는 이 사랑으로 꽃을 들고 건널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