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창이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장꽝을 벗어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는 모든 신을 한곳에 모셔 두었다.
<장물 - 간장> 중
외가에 내려가 처음 맞닥뜨린 것은 낯선 말들이었다. 꼬뿌를 가져오라고 하면 부엌에서 어리둥절 헤매다가 병따개를 가져가서 웃음을 사기도 하고 무엇이 기다는 것인지 벙어리처럼 어버버 거리며 제대로 대답을 못하곤 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첫 수업을 마친 날, 선생님께서 다정하게 웃으시며 '가자~'라고 하셨다. 왜 가자고 하시는지 몰랐지만 일단 선생님 말씀이니 학원 문 앞에서 기다렸다. 다음 수업이 끝나고 문이 열리자 선생님께서 또 "누구야 가자~"라고 하셨다. 그러자 아이는 "네~" 하더니 곧장 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발견하신 선생님께서 물었다. "니는 안가고 모하노?" 가자,는 말은 같이 가자는 뜻이 아니고 잘 가라는 뜻이었다. 열 살이 넘어서도 배울 말은 여전히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낯선 고장에 가면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는 기분을 사랑한다.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고립될 수 있고, 그렇게 한 걸음 물러난 자리에서 편안하게 낯선 말들을 경청할 수 있다. 아아, 감탄할 수 있다.
오래전 입말이 아직도 회자되는 일은 귀하다. 대물림되는 감각이 있으니. 말은 몸의 일부다.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한 바퀴 돌아 나의 목소리를 입고 나오면 또 누군가의 귀에 스며든다. 전해지고 전해지면서 마음이 겹치는 일. 낯선 말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때 손톱이나 발뒤꿈치처럼 그저 '나'인 말을.
멀거나 가까운, 아련하거나 살가운, 이웃이거나 가족이거나 혹은 나 이거나 한, 말들을 길어올려 한 상 가득 차리니. 기쁘기도 하지. 낯선 말들 앞에 무장해제되는 몸이란 마음이란. 그래서 제목도 충청도 말 사전이 아닌 충청도 마음사전. 괄호 속엔 (몸)이기도 하겠다. 아름답고 정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