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우리의 소원은 전쟁

by 별이언니

그냥 창피했거든요. 저는 장교이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젊은 사병들이었어요. 장교 옷을 입고 이럴 때 도망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마다 스타일이 있다. 서사가 강한 작가, 캐릭터가 매력적인 작가, 이미지가 섬세한 작가, 메시지가 분명한 작가, 정서가 아름다운 작가. 장강명은 어떨까. 그의 소설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섬세하고 아름답고 다층적인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흡입력과 장악력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로잡히지는 않지만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힘. 장편소설이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 아닐까.

어렸을 적 멋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노래는 지금 여기 우리에게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되었다. 마녀의 가마솥처럼 온갖 흉악한 재료들로 끓어넘치던 그 시절이 하나였던 나라와 민족을 갈라놓았다. 처음부터 이질적이었던 두 나라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멀어져 비슷한 유전자와 같은 언어를 쓰고 심지어 서로를 동포라고 부르면서도 쉽게 만나지도, 만난다 한들 선듯 반가워하기도 어려운 '남보다 못한 사이' 가 되어버렸다. 온갖 사정으로 갈라졌기에 막연하게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언제 어떻게 하나가 될지에 대해서는 숙고도 토론도 갈망도 없는 미묘한 몇십 년이 흐르고 있다. 언론사 기자였던 작가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일 시나리오'를 가지고 이 작품을 썼다고 했다. 작품 속에서 구현된 가장 이상적인 통일 시나리오는 남미의 마약 카르텔을 다룬 피비린내 나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진저리를 쳤고, 소설 속 상황이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음에 더 소름 끼쳤다.

장강명의 캐릭터들은 얕지는 않지만 다층적이지도 않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이야기를 단숨에 끌고 가고 거기에 적당한 캐릭터들이 포진한다. 마치 공간과 시간과 인간이 한데 뒤엉켜 흘러가는 거대한 탁류 같다. 그래도 거대한 서사의 굽이를 넘고 나면 인간은 변한다. 그의 캐릭터들도.

더럽고 추악한 현실 속에서 그의 캐릭터들은 몸으로 구르며 변해간다. 그다지 철학적이지도 않고 깊이 고민하지도 않지만. 단순히 살아남으려다 보니 다른 목적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피붙이 같은 은인을 저버리고서라도 지켜야 할 마음을 어렵게 움켜쥐기도 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는 나라의 개 같은 부름 앞에 거지 같은 곳에 떨어졌음을 내내 한탄하다가도 수류탄이 코앞에 떨어졌을 때 그 위로 몸을 날리는 것처럼. 장교라지만 그도 젊고 어리숙한 청년에 불과한대도. 그렇게 그의 소설 속 인간들은 희망을 보여준다. 그건 작가가 어찌할 수 없이 내비치는 소망이기도 하다.

소설 속 문제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소설 속 캐릭터들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갈등하고 고민하며 그저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내가 읽지 못한 마지막 페이지 너머 그들이 나름의 '정답'을 찾아가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의 우리들이 그러는 것처럼. 인간은 무력하고 나약하며 이기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면 우리가 휩쓸린다고 생각하던 탁류에서 팔다리를 휘저어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자유의지란 그런 것이다. 거창하고 위대한 선언이 아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발버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