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불고 무너지는 것들은
질서가 있는 구조물이었다
넝쿨들은 대책 없는 질문을 받고 묵묵한 대답을
준비 중인 것처럼 보이지만
딱, 한 해만 엉키면 끝이 나는 해답의 끝에
녹스는 장식이 아름답다
<넝쿨의 시절과 철조망의 시절> 중
담쟁이 단풍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원래 넝쿨을 무서워한다. 곁에 있는 무엇이라도 감고 올라가 빽빽하게 잎을 틔우는 생명력이 징그러웠다. 나는 여름의 나무 앞에 서면 온몸이 가렵다. 여름나무의 몸내가 짙어서 상대적으로 희박한 나의 영혼은 겁을 먹는다. 오오, 무성하기도 하지. 우글우글 가득하기도 하지.
한밤을 걷고 또 걸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목구멍 가득 차오르면 사무실 슬리퍼를 신은 채로 밖으로 나와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도시의 밤은 현란해서 길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시끄럽고 차들이 요란하게 오갔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허공에 붙잡힌 불빛 하나 둘. 희망 없는 일에 사로잡혀 이 깊은 밤 건물을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나도 그중 하나.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곳에 맺힌 이슬 같은 것.
인간의 세상은 언제쯤 고요해질까. 인간의 소음이 사라진 먼 훗날에 이 행성은 식물들이 내는 소리로 소란하겠지. 나무들은 무성해지고 잎을 떨구고 껍질을 부풀리고 뿌리를 기르겠지. 행성을 두 조각내는 것은 아마도 식물들. 먼지처럼 가볍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인간들이야 무슨 힘이 있겠어. 그래서 가엽고 쓸쓸한 인간들의 한순간이 못내 마음에 걸려
시인은 시를 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