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사원증을 며칠째 가방에 넣고 다녔다
사원증 속 너의 얼굴은 스크래치투성이 회색이다
반납해야 하는 사원증을 몰래 가지고 나와
비틀거리는 발들 사이로 던진 것일까
너의 사원증을 주워 든 순간
질문들이 쏟아져 내렸다
너의 입술이 쏟아져 내렸다
너의 증상이 쏟아져 내렸다
너는 전자칩이 내장된 사원증처럼 너를 증명해야만 했다
너는 감지되어야만 그 사무실 그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너는 우수한 아이디어를 뽑아내야만 투명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너는 부표처럼 나눠주던 식권을 뜯어야 일용할 양식을 비열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지겨움의 아름다움은 우울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따분함의 환호를 이길 수 없었다
너를 뒤따라가던 중이었다
딱딱해진 너의 심장을 주웠을 뿐인데
딱딱한 눈꺼풀에 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숨>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는 한다. 너는 단 하나의 특별한 가치라고 한다. 실감 나지 않는 명제들.
누군가에게 끝없이 존재 증명을 해야만 생활이 유지된다. 나의 집에 밥과 물이 끊기지 않고 좁고 낡은 침상이라도 몸을 눕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감 나지 않는 명제들을 가슴에 품는다. 단 하나의 특별한 가치인 나를 나에게 증명하기 위해 오늘도 슬프고 어리둥절하다.
태풍이 오기 전 하늘은 금빛이었다. 보물창고의 문이 미어지기 직전이었다.
우리가 밤마다 잠들며 하나씩 놓친 특별함들이 모여 드디어 하늘이 무너지려나 했다. 천지개벽의 날, 아무나 였던 누구나 가 광장에 모여 쌀과 꽃을 뿌리고 춤을 추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