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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Aug 19. 2023

황정은, 파씨의 입문

그것은 파씨의 표면을 뚫습니다. 파씨는 뒤를 돌아봅니다. 등 뒤에 펼쳐진 바다를 봅니다. 발밑의 모래는 미지근한 거품으로 덮여 있고 수평선은 그저 한 겹의 주름인 듯 흐릿하고도 덤덤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파씨는 줄곧 바다를 바라보지만, 온다던 파도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파씨는 겁을 먹고 소리를 죽여 우는 것에도 지쳐 다만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때 누군가 말합니다. 이번 파도는 너무 작았어, 다음 파도를 기다려. 파씨는 놀랍니다. 바다를 보고 있는 어른들을 올려다봅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이미 왔다니. 가버렸다니. 바다를 바라봅니다. 왔는지도 모르게 왔다 가버린 파도, 그냥 가버린 첫 번째 파도의 규모를 생각합니다. 이미 이전과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생각합니다.


<파씨의 입문> 중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어느 시절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냄새로, 누군가에게는 통각으로, 누군가에게는 눈부심으로, 누군가에게는 소리로. 사방에서 엄습하는 '살아감'이라는 감각을.

스무 살이 넘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걸까. 성장통이라는 말이 허용되는 것은 언제까지일까. 나는 한동안 환상통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환상통을 앓아본 적도 없으면서 열렬하게 환상통을 생각했다.

그건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퇴근하면서 매일 지나치던 집의 담장 위로 장미가 한 송이 피었다. 봉오리에서 꽃잎이 열리고 점점 부풀다가 이윽고 활짝 피어올랐다. 장미가 피던 밤의 들쩍지근하게 더워서 밤공기가 장미향으로 가득 찼다. 처음으로 생각했다. 만발한 꽃의 몸내는 상하는 징조라고.

꽃은 피어올랐고 한참을 머물렀고 겉잎부터 주글주글해졌고 탁해졌다. 바람에서 습기가 사라졌을 무렵 꽃은 말라붙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그건 사라졌다.

꽃이 사라진 자리 아래 서서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꽃은 어디로 갔을까. 일렁이며 가지 끝에 옮겨붙는 꽃의 환상을 보았다. 그때 알았다. 우리는 모두 환상통을 앓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장미를 썼다. 지금도 쓴다.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불꽃처럼 일렁이던 장미를.

인간의 체온을 받아들여 죽지도 못하는 고양이처럼 사라지지 않는 통증을 끌어안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면 항아리의 무덤이 있다. 지금이라면 묻을 수 있어,라고 내미는 손을 겁에 질려 쳐다본다. 지리멸렬하지만 눈부신 사랑을 물방울무늬 양산 아래 두고 묽어질지언정 들러붙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인간의 짧은 순간과 긴 인생을 무서워하며 따라간다. 덤덤한 언어로 옮겨놓는다. 그건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어느 시절.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시작되는 환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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