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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Aug 23. 2023

정보라, 저주토끼

어떤 사람들에게 삶이란 거대한 충격과 명료한 생존본능이 동시에 찬란하게 떠오른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채, 유일하게 의미 있었던 그 순간에 했듯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되풀이해 확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 순간은 짧지만,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생존을 그저 무의미하게 반복해서 확인하는 동안 좋은 시간도 나쁜 시간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삶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과거에 고정되어버린 사람들, 그도, 그의 할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나도, 살아 있거나 이미 죽었거나, 사실은 모두 과거의 유령에 불과했다.


<재회> 중



인간을 생각하면 환하게 터지는 공기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끌탕이다. 하염없이 늘어나는 거죽 안에는 과연 무엇이 출렁이고 있을까. 무섭기도 하지만 그저 안쓰럽기도 하다. 내가 타인을 볼 때도 그렇지만 거울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자다가 깨어 무심결에 몸을 쓸어내리고 아직 여기 머묾에 안도하며 얼굴에 손을 얹으면,

손가락이 지나가는 뼈와 가죽, 그 아래 읽을 수 없는 표정이 궁금할 때가 있다. 이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나는 어떤 표정으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가.

정보라의 소설들이 따듯하고 슬픈 것은 마지막엔 꼭 누군가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에겐 막막한 시간만이 펼쳐져 있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우주처럼. 그러나 그는 숨을 몰아쉬고 들이마시고 걸음을 옮긴다. 살아남음을 선택한다.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오로지 그만이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어떤 저주가 있더라도 끝에는 피 묻은 손을 들여다보며 잠들고 깨어나 읽을 수 없는 표정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멈추는 인간이 있다.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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