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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Aug 31. 2023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나는 지금껏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몇 번이고 나에게 있어서 규호가, 우리의 관계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둘만의 특별한 어떤 것이었다고, 그러니까 순도 백 퍼센트의 진짜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온갖 종류의 다른 방식으로 규호를 창조하고 덧씌우며 그와 나의 관계를, 우리의 시간들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했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규호라는 존재와 그때의 내 감정과는 점점 더 멀어져버리고야 만다. 진실과는 동떨어진 희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내 소설 속 가상의 규호는 몇 번이고 죽고 다치며 온전한 사랑의 방식으로 남아 있지만 현실의 규호는 숨을 쉬며 자꾸만 자신의 삶을 걸어나간다. 그 간극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모든 것들을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지난 시간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써왔지만 결국 나의 몸과 나의 마음과 내 일상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더 여실히 깨달을 따름이었다. 공허하고 의미 없는 낱말들이 다 흩어져 오직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만이 남는다.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미간에 짙은 주름을 짓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의 호흡만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세상.


<늦은 우기의 바캉스> 중



책을 읽는 내내 지나간 사랑을 복기했다. 무엇 하나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부러진 말들, 유리조각에 담긴 기후, 가볍게 씁쓸한 감정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 시절에는 분명 뜨겁고 치열했을 텐데 마치 전생의 일인 것처럼 멀고 아득했다.

그래서 부러웠다. 모든 사랑에 최고의 수식어를 부여하며 뜨겁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생을 다 건 것처럼 사랑했고 다시 또 사랑이 찾아오면 다음 생을 가불해서라도 절박하고 절실한. 대도시의 사랑법이라고 쓰고 빗방울처럼 가볍게 말해도 그의 사랑은 모두 영혼의 일부가 결락되는 일이었다. 그의 영혼을 가져간 사람들은 이 도시의 노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역시 뜨겁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기억할까.

풍등에 새긴 이름만이 소원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망가지며 살아온 우리들이 여기에 도착해 떠올리는 소원이라면

그건 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 없는,

완전무결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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