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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Oct 11. 2023

김소연, 촉진하는 밤

꽃을 노려보는 일, 나는 그럼으로써 사랑이 비대해지는 걸 경계하는 중이다

<무한 학습> 중



사라지기 전의 햇빛을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다. 오늘의 빛이 다 소진되어 이제 손가락 한마디만큼 남은 즈음을. 마침내 사라지면 시작될 장엄 서사를 떠올리며 잠깐 움츠렸던 것도 같다. 밤은 언제나 웅장하니까. 암흑은 제왕의 소유물이다.

세상의 윤곽을 겨우 밝히며 거기 머무르는 빛은 얼마나 연약한가. 한낮의 가는 뼈와 얇은 피부를 어루만지며 그 안에 담긴 뜨거운 것을 상상했다. 참을성 있게, 침착하게, 매일 일어나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청소를 하고 시들어가는 화초의 잎을 닦는 사람을. 그 조용한 광기를, 뚜껑을 밀어올리지 않는 열정을.

그는 모든 빛을 끌어안고 웅크리겠지. 조그맣게 단단하게. 환하게 터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서 팔과 다리를 엮겠지. 그렇게 매일 시를 쓸 것이다.

사라지는 빛에 손가락을 걸었다. 소진되는 것들에 나만 아는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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