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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Oct 01. 2023

다비드 그로스만,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어. 그러니까 남자가 뒤에서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찔렀어. '용서를 구하라니까' 나는 말했어. '누구한테 구해요?' 나는 그쪽을 보지 않았고, 그냥 문득 머릿속에서 그게 사실 그리 길지 않은 꾸러미니까, 어쩌면 엄마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했어 - 엄마가 아니라고! 어쩌면 그냥 무서워서, 내 정신이 나를 가지고 논 건지도 몰라. 어쨌든 그 순간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전이나 후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기분이었어. 미칠 듯한 행복이었지. 마치 나 자신이 죽음에서 구원을 얻은 것처럼. 남자는 다시 내 어깨를 밀었어. '어서, 용서를 구해.'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어. '하지만 누구한테요?' 그러자 남자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나를 찌르던 걸 멈추고, '모르는 거냐?' 하고 물었어.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어. 그러자 그는 공황에 빠졌어. '말해주지 않았니?' 나는 다시 말해주지 않았다고 대답했지. 남자는 몸을 구부려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고, 그러자 내 눈 맞은편에 그의 눈이 보였어. 그는 잔잔한 목소리로 조용하게 말했어. '여기 이게 네 엄마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중



가끔 생각한다.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은 대체 뭘까. 사람들은 간혹 희망이라고 말하고 꿈이라고도 하며 욕망이나 미련, 사랑을 말하기도 한다. 나는 건조하게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몸에 익은 습관을 자동 실행하다 보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흐른다. 그러나 인간도 생물인 까닭에 습관은 쉬이 헐거워지고 마냥 빡빡한 것만 같은 하루에도 틈이 생긴다. 그 사이로 빗물이 고이고 햇빛이 들고 이끼가 끼고 눈송이가 내려앉고 작은 꽃이 핀다. 산책 나온 강아지의 조그마한 발이 담겼다가 사라진다. 녹슬고 그늘진 자리, 그것이 있기에 인간은 권태에 잡아먹히지 않고 무사히 습관을 실천하며 살아남는다.

그러나 틈새는 빛나는 순간만을 담지 않는다. 밤이 숨어들고 길 잃은 유령이 둥지를 틀면 절망이 자란다. 슬픔이 깊어지고 우울이 오래되면 습관이 되기도 하지만 격렬한 감정이 되기도 하는 법. 그럼 인간은 어떻게 절망에서 벗어나는가. 절망에 잡아먹히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는가.

가장 끔찍한 순간에 숨을 쉬지 않고 웃었다. 가짜 감정을 만들고 그걸 흩뿌렸다. 누구도 나의 절망을, 나의 공포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거울 속의 끔찍한 나를 들키지 않도록. 절망은 너무 깊어 타인에게 들키면 바로 절명할 것이 뻔했기에. 누구도 내가 지금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길 바랐다. 간절하게.

그래서 우리는 무대 위의 광대를 사랑하면서도 혐오할지도. 그는 나의 자화상이다. 부자연스럽게 구겨진 웃음 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 있다. 그가 침을 튀기고 미친 호르몬을 뿜어내서 우리를 매료할지언정. 웃음이 끊기면 그는 손바닥과 주먹으로 사정없이 자신의 얼굴을 후려친다. 타인의 웃음이 아니면 이미 두발로 설 수 없는 절망이, 평생에 걸쳐 누적된 절망이 바로 그다.

누구도 그의 진짜 얼굴을 모른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그래서 필요했다. 그를 바라보고 그를 이야기해 줄 사람이. 그에게 절망이 찾아오기 전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우리는 그저 어리둥절한 감정에 사로잡혀 그의 이야기에 끌려갈 뿐이지만. 그래도 의미 있게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칠판에 붉은 금으로 남지 않았다. 더 크게 웃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 질렀다. 진땀을 흘리며 깨달았다.

인생을 구원할 방법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쇼는 끝났다. 오늘의 도발레도 끝. 내일은? 글쎄, 그건 내일이 와야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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