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임 Nov 11. 2023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 소유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롤런드가 말했다. 「하지만 사랑은 불편해요. 내가 지금 미래를 확실히 잡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게 됐어요. 가장 최악의 길이죠. 우리는 아무것도 안 믿었잖아요. 완전한 몰입, 밤과 낮, 그런 것들 말이에요. 내가 당신을 봤을 때 당신의 표정은 살아 있었어요. 나머지는 다 희미하게 사라져 버렸죠. 모두가.」



결국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영민한 시인은 알았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공손한 문장 속에 불안하게 떨리는 폭풍을 섞어 보냈다, 그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그러나 사랑에 사로잡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해 안절부절못하며 열정을 키웠다. 어쩌면 그는 애초부터 그녀를 그저 사랑했을 뿐인 지도 모른다. 그가 평생을 바쳐온 시에 사로잡혀 그는 순수한 끌림조차 시와 시의 만남과 융합 정도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저 잘생기고 머리 좋은 남자였다면 크리스타벨은 그에게 이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바치는 찬사가 그녀의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이나 차가운 눈동자, 창백하고 고귀한 피부 정도였을 테니.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를 쓰며 죽을 때까지 시인이고자 했던 예술가에게 명성을 얻은 당대의 뛰어난 시인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여러 통의 편지로 보내온다면, 어쩌면 그녀는 그를 세상으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 남자가 여인으로서의 자신이 아닌, 멜루지나의 화신인 자신에게 순수한 열정을 바친다고 착각할지도.

이야기의 끝은 현대로 돌아와 옛 연인들의 자취를 더듬던 이들이 드디어 연인이 되는 아침이다. 폭풍 뒤에 찾아오는 싱그러운 내음이 문장에 물씬 풍긴다. '죽음과 파괴의 내음이자 신선함과 활기와 희망의 내음'. 사랑을 얻고 그들은 무언가를 잃었다. 그들 속의 무언가가 영원히 죽어버렸다. 그러나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시 바람에 흩어질지라도 소중한 것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은 계속된다는 것을. 그렇게 생명은 순환한다는 것을. 폭풍 속에 버렸다고만 여긴 아이가 자라 다시 아이를 낳고 또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먼 어머니의 비밀에 닿게 되는 일처럼.

크리스타벨은 마지막 편지에서 고백한다. 그 여름이 아니었다면 나도 당신처럼 위대한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고. 그러나 일어나버린 일은 일어나버렸고, 동기가 어떻든 과정이 어떠하든 그 여름은 발생하여 지나갔다. 자궁에 깃들었다가 바람으로 내보낸 비밀에 그녀의 시 일부분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계속 시를 썼지만 더 이상 완전하지 않았다. 엄격한 고독을 잃어버리고 불편한 사랑을 얻었다. 애쉬, 그 남자가 잃은 것이 있을까. 엘런은 남편을 소유했다고 생각했지만 잃어버렸고, 크리스타벨은 시에 맞닿은 영혼 일부를 희생했다. 어떤 면으로도 나는 랜돌프 애쉬를 옹호할 수가 없다. 그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여겼기에 그녀와 아이를 잃어버리고 분노했다. 금빛 머리카락을 얻었으면서도, 더 이상 좇지 않겠다고 전해지지 않는 약속을 남겼으면서도 죽어가는 병상에서조차 집요하게 그는 끝끝내 갖지 못한 것들을 원했고, 갖지 못함에 분노했다. 나는 그의 사랑이야말로 저열한 소유욕으로밖에 볼 수 없다. 우정이라든지 이해라든지 하는 포장으로 둘러싼 욕정.

그에 비하면 롤런드와 모드에겐 희망이 있다. 그들은 이미 옛 연인들의 발자취를 쫓으며 고독의 중요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나 모른다. 알 수 없다. 사랑은 쉽게 상하는 물약이기에. 언제 부패하여 고약해질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경계와 포개짐과 덧붙임을 응원한다. 소유하려 했던 남자와 이미 끝을 예감했으면서도 어쩔 수 없었던 여자의 풍경 위로 서로 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고요에 잠겨 나란히 앉아있는 그들이었기에. 우리는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기에 목이 탄다. 갈증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갖는 것이 아닌 이어짐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럴 수만 있다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김소연, 촉진하는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