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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Dec 02. 2023

메리 올리버 시선집, <기러기>

바람이 불면 세계의 색이 변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기쁘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라고 속삭이는 사람의 표정은 빛난다. 언덕에 서는 일의 기쁨을, 숲이 자라는 신비를, 푸른부전나비와 황금 방울새와 물뱀과 소라게와 올빼미와 곰과, 양귀비와 능소화와 백합과 수련과 장미와, 딸기 달과 수사슴 달과 사냥꾼의 달과 늑대 달과 뼈의 시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사람의 시는 아름답다.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지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인간의 마을은 숲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우글우글한 뿌리 위에 산다. 티끌처럼 반짝이며 멀리 날아가는 생명들 속에 함께 불어 가는 찰나의 생이지만 태어나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행복하고 까맣게 젖어들었다가 봄처럼 피어나는 우리는 거대한 순환 속에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바로 앞도 보지 못하고 마음속 지옥과 천국만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보렴. 눈을 들면 인간의 마을 속에도 여전히 꽃이 피고 구름이 움직이고 뉘엿뉘엿 나비가 날고 계절마다 다른 아침과 오후가 찾아온다. 바람이 불면 세계의 윤곽이 달라진다. 우리는 여전히 경이 속에 산다. 햇비에 젖은 손가락으로 이마에 가만히 적어주는 시가 있다.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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