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by 별이언니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지만 떡볶이는 좋아합니다. 우리에겐 영혼의 음식들이 있잖아요. 국수, 청국장, 우엉이 들어간 김밥, 그리고 떡볶이.

오늘은 아침 일찍 나가 머리를 자르고 떡볶이를 사 왔습니다. 부산식 떡볶이라는데 새빨갛다 못해 검붉은 빛이 돌았어요. 보기보다는 맵지 않을 것 같았지만 가끔은 김치도 씻어먹는 어린이 혓바닥이라

시장을 보는 김에 반의반 통으로 소분한 배추도 샀습니다. 한겨울에 배추라니, 배추를 손에 든 순간부터 생기가 돌았어요.

물든 잎도 말라 사라지고 흙에 남은 물기도 흩어진 겨울 밭에 보따리처럼 배추들. 그래서 배추는 강인해 보입니다. 나는 배추를 좋아해요.

잘 씻어 물기를 털고 베어 물면 은은하게 도는 단맛이 좋아요. 묽게 갠 부침 반죽에 얇게 적셔 기름 자작하게 두르고 부쳐낸 배추적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속이 약하고 게으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씻어서 전자레인지에 이삼 분 돌린 배추 잎사귀. 연하고 슴슴한 배추찜.

간장도 필요 없어요. 배추는 결결이 맛을 품고 있으니까요. 무심한 듯하지만 오래 씹으면 늦가을 흙향과 겨울 새벽의 찬기가 코에 훅 올라오지요. 봄볕처럼 금방 사라지는 단맛도.

뜨거운 배춧잎을 손으로 찢어 후후 불어 먹었습니다. 떡볶이에 함께 먹으니 맵지도 않고 더 좋았어요.

겨울에는 배추를 먹어야죠. 땅의 기운을 몸에 들여야죠.

이래봤자 내일은 또 심드렁하게 차나 몇 잔 마시며 굶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배추를 먹었습니다. 그러니 건강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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