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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Dec 07. 2023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몹시 추웠다. <박하>의 북토크가 홍대 인근에서 있었다. 사진으로 보던 시인은 손짓을 하고 인사를 건넸다. 부드럽지만 살짝 어색한 표정. 나처럼 시인의 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시인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해바라기처럼. 온화한 기후대에 늦장을 부리다가 발목이 잡힌 계절처럼 활기 넘치는 행사장에서 유독 시인은 외로워 보였다. 아니, 외로웠던 것은 나였겠지. 청량하게 흘러가는 봄의 개울 속 채 녹지 않은 얼음을 보는 기분으로 나는 서걱거리며 물러났다. 행사장 2층 가장 어두운 구석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감기가 오려는지 내내 두통이 심했다. 몇 년 후 시인은 멀리서 더 먼 곳으로 떠났다.

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시가 있다. 허수경 시인의 시다. 보리차를 마실 때면, 고지서를 살필 때면 시인의 글이 생각난다. 자장면을 먹을 때, 진주에 갔을 때, 흙 속에서 유리조각을 주울 때, 내 안에서 자동기술되는 시들. 어떤 시는 영혼에 뿌리를 내린다. 그렇게도 연한 발톱으로 움켜쥐고 도통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인이 더 멀리 가기 전에 쓴 글들을 이렇게 곱게 엮어두었다. 보통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유고집이 그렇겠지만 이 책을 엮은 마음은 더 각별한 것 같다.

이 세상에 머물 적에도 늘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듯만 했던 시인. 어디에서도 머물 곳을 찾지 못해 고아 같았던 시인. 발굴을 멈출 수 없었던 시인. 편하게 살려고 한다면 방법을 모르지도 않았을 텐데, 연인처럼 불안의 뺨을 비비던 시인. 가릉가릉 앓는 노래가 전염되어 시절마다 잊지 못할 시인.

숨이 옅어지는 순간순간에도 남아 있는 몇 편의 시를 쓸 생각으로 다정했던 시인이 남겨놓은 글들을 읽었다. 내 영혼에 또 부드러운 가시가 박혔다. 귤을 먹을 때마다 또 생각하리라. 건너간 곳에서도 유랑할 예술가가 오늘 따뜻하기를. 그 쓸쓸이 다정하여 부디 앓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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