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무지막지, 어처구니라는 수식어를 순정 앞에 붙이려면 바로 이 시들이 아니겠는가. 하루 종일 컴컴하고 비가 내렸다. 불온하게 따뜻한 겨울이다. 꼭 봄날 땅을 깨우는 비처럼 길고 온화하게도 내린다. 창을 열어두고 시를 읽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시를 읽었다. 쓰라린 행과 연 사이로 비가 내렸다. 삽날이 나무의 물관을 쳤을 때 치솟던 수액도 이렇게 컴컴했으리라. 나무는 흰 피를 흘리지만 돈에 눈이 멀었으니 맑은 피가 피로 보이겠는가. 집으로 돌아가면 제집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제집 정원의 수국을 염려하는 손이 산을 도륙했다.
지난봄 그 산에 꽃을 심었다. 누구의 눈에는 돈으로 보이는 산도 지키려는 사람의 마음에는 어여쁘게만 보인다. 마음이 거울이다. 맑은 초록이 넘실거리는 봄, 산그늘을 키우는 여름, 색색의 뼈를 기르는 가을, 뱀과 개구리를 재우는 겨울이 보이는 마음과 산을 파고 밀어내 돈을 벌려는 마음. 어느 마음으로 살고 싶은가는 자명한 일이다.
수십억 년 후 태양이 지구를 잡아먹기 전까지 지구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겠으나 인간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이미 인간세의 종말을 염려하고 있다. 불과 백 년 사이에 지구의 숨붙은 모든 것들의 시간을 위태롭게 하니 인간이 지구의 흉물이다. 망하는 것은 자명하나 언제 어떻게 망하는지는 이제라도 정할 수 있다. 우아하게 아름답게 망할 수도 있지 않겠어? 불타는 집안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나무들을 보고 술을 기울이는 퇴폐보다 나무의 커다란 잎사귀가 이마를 쓸어주는 죽음을 택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시집은 그런 이야기다. 숲의 쇄골을 베고 누워 단잠을 자고 싶은 '인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