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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Dec 13. 2023

유희경, 겨울밤 토끼 걱정


오늘 죽은 이가 궁금한 것은 내일의 날씨라고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죽은 벗의 장례식장에서.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한다.

이를테면 이야기. 요즘은 드라마나 연재하는 만화일까. 친구가 명탐정 코난의 완결을 보기 전엔 죽을 수 없다고 해서 불로초라도 찾으러 가야 하냐고 한바탕 웃었는데. 세헤라자데는 부드러운 무릎에 포악한 왕을 눕히고 밤을 자아 이야기를 지었지. 가련한 여자의 목을 비틀고 싶은 욕망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천일을 기다리는 왕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눈도 내리지 않는 어둡고 긴 밤의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먼지와 모래 알갱이, 굴러다니느라 지워진 이야기들이 바스락거리겠지. 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며

문득 궁금해진다. 유난히 선명한 겨울밤의 사물들의 정체를 과연 나는 알고 있는지. 저것이 비닐봉지인지 아니면 발바닥이 빨갛게 언 토끼인지.

술잔을 돌리고 난로의 심지를 돋우고 전등은 흔들흔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웃는 동안

이것은 나의 이야기인지 이야기 속 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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