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일고 뜸을 들인 밥을 소담하게 퍼서 한 그릇 내어 준다. 뜨물로 끓인 된장국도 물론. 연인이 아픈 손목으로 물기를 짜준 것 마냥 고들고들한 장아찌에(신미나 시인의 이 시를 좋아한다) 슴슴하게 무친 나물. 그런 밥은 향기가 난다. 저녁 내음, 긴 산책 후 신발바닥에서 나는 흙내음, 외로운 날 얼굴을 기댄 등에서 전해오는 온기, 나도 모르게 꼭 쥐고 있던 손을 펼치면 손금에 고인 내음. 넘기기가 아까워 눈물이 될 때까지 씹고 있으니 숟가락 위에 슬그머니 고등어 한 점이 올라온다. 희고 도톰한 손마디가 어여쁘다. 이 책은 그런 밥상을 닮았다. 서두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주저앉지도 않은, 적당히 느린 걸음으로 온화하게 걷지만 신산한 삶은 수렁처럼 커다란 그림자로 따라간다. 몸이 아픈 부모, 내 몸에 깃든 병, 가난하고 어린 연인, 방을 옮길 때마다 그늘도 자리를 옮기며 따라다닌다. 삶이란 길고 산만한 이야기. 세상 모든 이치처럼 살아간다는 것도 허투루 소모할 수도 있겠으나 우직하리만큼 성실한 시인은 그럴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에 불길하리만치 머무는 습성을 가진 작가라는 족속 중 성실하기까지 하니. 왼 어깨에 앉은 에고의 나비와 오른 어깨에 앉은 파쇼의 까마귀가 번갈아 울부짖고 속삭인다. 흔들리면서 나아간다. 망각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놀랍도록 성실한 생활. 나는 가끔 거울을 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 지워지고도 남은 파편은 예리해서 밤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벌떡 일어나지만. 시인은 생인손처럼 천천히 곪는 손가락을 차분하게 소독하고 새 붕대로 매일 갈아줄 것이다. 아프고 곪는 모든 과정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함께 상하고 함께 낫는다. 누군가의 삶을 이야기로 듣는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살 수 있다고, 더 살 수 있다고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이야기. 눈물이 났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성탄절의 선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