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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Jan 07. 2024

김연수, 원더보이

무엇을 기억하는 방식을 누구나 다르지만 각자의 표식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원주율 천자리까지 외울 수 있는 완벽한 인덱스라던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 라든가, 철새의 다리에 끼운 가락지의 숫자라던가, 국가 단위의 거대한 폭력이라던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떠오르는 가장 소중한 사람의 얼굴이라던가, 분신이라던가, 검은 양복 위로 쏟아내는 토사물이라던가, 수첩에 빼곡히 적힌 숫자라던가, 망원경이라던가, 천 개의 눈을 가진 짐승처럼 아름다운 밤하늘이라던가, 수억 개의 눈동자로 깜빡이는 눈송이라던가,

사랑이라던가.

사랑을 알면 초능력을 잃는다. 어른이 되면. 계절이 등을 떠밀어 몸이 자라고 무심하게 바라보던 사람에게서 꽃보라가 쏟아지는 것을 알게 되면. 나만의 밝고 환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것은 순수를 잃는 것이 아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던 타인의 마음을 읽고 따라 하기에 바쁘던 바보의 독법에서 천재의 독법으로 나아가는 것. 다시 말하자. 어른이 된다는 건 아득히 어둡게만 보이는 우주의 밤에서 빛을 찾아내는 과정. 아직은 멀어서 보이지 않는 빛과 희미해서 전심전력으로 바라봐야만 보이는 빛. 나만의 빛을 찾아내는 길이라는 것. 타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원더보이였을 때 그의 능력은 폭력에 이용당했으나 다 같이 웃는 것을 버리고 혼자 우는 것을 선택했을 때 불가능했던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는 더 이상 고아가 아니다. 그에겐 같이 밤하늘을 헤아릴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가 있으니.

간절한 것을 잃고 영영 사라질 것만 같은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아득히 걷다 보면 잃은 것들은 또 다른 의미로 차오른다. 사랑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계절풍을 타고 돌아오는 새들처럼 사랑은 잊어버려도 거기 있어 끝내 우리를 회복시킨다. 지나온 시간들이 있어 더욱 강하고 현명한 우리로. 이제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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