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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Jan 11. 2024

프랑수아즈 사강, 해독 일기

매사 자신만만하고 의기양양하던 사람이 쇠약해져서 갑자기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목격하면 도망치고 싶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와서다. 이럴 때는 쓸데없이 민감한 체질이 원망스럽다. 마주 앉은 사람의 감정 따위 알고 싶지 않다. 정작 스스로의 감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왜 그의 안절부절이, 겁에 질림이, 소스라침이 생생한가.

차라리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길 일이지. 그렇다면 날것의 감정을 보고 질겁하는 일은 없을 텐데. 고통의 밑바닥에서 혼몽하게 흘러나온 언어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일이야. 그렇다면 그 감정의 민낯을 어루만지고 싶잖아. 인간은 비루하나

예술은 아름답다. 어차피 들킬 일이라면 살냄새 땀 냄새 쥐어짠 공포의 단말마가 아니라 한번은 영혼에 담금질한 언어를 보고 싶다. 기린아였던 자여, 자유롭고 성실했던 자여, 우리는 언젠가 약해진다. 병이든, 중독이든, 나이든, 사랑이든, 공포든, 무엇이든. 인생은 칼날처럼 목덜미를 베어간다. 그때 사람의 옷자락을 움켜쥔들 흉측하게 일그러진 나를 확인할 뿐. 피를 찍어 모래에 글을 쓰자. 태양에 그을린 대지에 향긋한 피를 흘리자. 그럼 누군가 어쩔 줄 모르는 심정으로라도 거기 앉아 흔적을 따라갈 것이다. 아무리 약해진들 결국, 원하고 행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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