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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Jan 14. 2024

장이지, 편지의 시대

어떤 말들은 종이에 적어야 아름답다. 아침에 일어나 멍하게 책장 앞에 앉아있는데 구석에 꽂힌 시집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로로 정갈하게 적힌, 저 다정다감한 호명. 나의,라는 소유격도 침울한,이나 소중한, 이란 감정도 입술에 올리는 순간 저만큼의 빛을 담지는 못한다.

이건 어쩌면 나의 병. 나의 서랍에는 편지지와 엽서가 가득 들어있다. 여행을 가면 엽서를 산다. 서랍 가득 들어있는 엽서를 생각하며 망설이지만 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언젠가는 당신에게 편지를 쓸 테니까. 나는 거기 아름다운 말들을 가득 적을 것이다.

어떤 말들은 뇌의 주름이 아닌 심장의 세포에서 거품으로 피어난다. 너무 연약해서 성대를 지나 혓바닥에 올라와 이빨에 부딪치며 상온의 대기로 튀어나오는 순간 상해버린다. 멍든 복숭아처럼 가련해진다. 대체로 마주 앉은 얼굴이 있어서 그렇다. 영혼을 나눠가진 이라면 무색투명하게 말을 받아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 그런 기적을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을 감당하지 못한다. 마음에서 태어난, 마음의 성질을 가진 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말들은 꾹꾹 눌러써야 아름답다. 종이에 적힌 말들이 침몰한다. 지글지글 타오르며 가라앉는다. 천금의 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나도 몰랐던 나의 마음을. 무럭무럭 자라 자글자글 주름진 나의 마음을. 그러므로, 그리하여 아름다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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