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그림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난 고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을 떠올렸다. 자를 대고도 줄을 반듯하게 긋지 못할 정도로 손이 둔했던지라 미술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위인전은 뻔뻔하게도 근엄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 세상엔 노력으로도 안되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 이 년에 한 번 전교생이 작품 하나씩을 전시하는 미전에 나는 낼 작품이 없었다. 미술 선생님께서 혀를 차시며 옆자리 짝꿍에게 대신 좀 그리라고 농을 하실 만큼. 엉망진창인 파스텔화엔 장미가 딱 한 송이 붙었는데 옆 학교에 다니던 초등학교 동창 남자아이가 불쌍해서 붙여준 거였다. 그 아이는 나의 첫사랑이었다.
시도 그림도 결국은 인간이 인간에게 건네는 무엇이어서 통하기 마련이라 생각했지만 이 책은 예상을 뛰어넘는 다채로움을 보여주었다. 시만 읽는다면 느리고 엄격하게 읽었을 것이고 그림만 봤다면 무릎을 감싸고 앉아 하염없었겠지. 그러나 둘이 나란히 있으니 좁은 정원에 색과 향이 넘쳐흘렀다. 시와 그림은 따로 있었다면 아마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었겠지만 함께 있어서 좀 더 명확해졌다. 그러나 좁아진 만큼 풍성해졌다. 광활한 행성을 걷는 것도 여행이지만 정원에 핀 꽃들의 색과 향, 질감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일도 여행이다. 좋은 책은 비행기 티켓을 끊지 않아도 꽉 찬 여행의 기쁨을 선물한다. 책 속의 여자도 그랬다. 한 뼘 공간에서 여자의 하루가 영글고 저물었다. 좋은 날의 해가 그러하듯이 나도 묵묵히 여자를 바라보았다. 발가락부터 종아리, 무릎과 배꼽, 가만히 수그린 정수리와 콧잔등을 지나 길고 곧은 등을 따라 기울어지며. 그러면서 나도 어느덧 여자에게 스며들었던 것 같다. 푸르고 검고 노랗고 때로는 희고 검은 여자의 선과 면으로.
원화 전시회에 갔다. 눈이 오래 머무는 그림에는 팔렸다는 표시로 붉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시도 그림도 서로 다른 여행을 하겠지. 그럼 그들의 세상은 희박해지며 더 넓어질 것이다. 평행우주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가 생기겠지. 그래도 좋다. 함께 있어서 농밀하고 이윽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떠나면 자유로운. 예술은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