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다고 생각하고 결벽적이라고도 생각했다. 작가가 토로한 대로 오랜 직장 생활, 특히 아주 약간의 실수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건설업에 종사했던 이력이 그런 습관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며 거듭거듭 인상을 쌓아가다 보니 더 깊은 지층 어딘가에서 스며나온 무엇이 있다고 느꼈다. 아버지와 남편으로 살아온 시간 한 움큼, 아들로 살아온 시간 한 움큼, 동생으로 살아온 시간 한 움큼, 시인으로 살아온 시간 한 움큼, 환자로 살아온 시간 한 움큼, 월급쟁이에서 퇴직자로 생활을 바꾸며 또 한 움큼. 그가 살아온 모든 이력이 하나하나 덧대고 거들어 지금의 그가 되었으리라. 아니, 어쩌면 더 먼 시간, 그가 잉태되어 몇 개의 세포였을 적 피와 살을 이루는 시간 동안 어쩌면 섞여들어온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지. 인간의 뇌는 먼 옛날 최초의 인간의 죽음을 기억한다고 한다. 존재하기도 전의 어느 기억이 눈썹이 되고 갈비뼈가 되었을지도. 가만히 짐작하고 가만히 끄덕였다.
한 편 한 편의 길이가 길지는 않으나 문장이 어찌나 하나하나 무거운지 얇은 책을 오래 읽었다. 내달리듯 읽을 수는 없었다. 그런 글들이 있다. 가볍게 깃들어 몸에 스미는 문장이 아니라 하나하나 제 무게가 있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 그래서 꼼꼼하게 엮은 피륙 같아 허투루 대하기 어려운 글. 농을 건네기엔 너무 진지한 글. 똑바로 앉아서 읽느라 더 더뎠을지도.
살아온 시간이야 누군들 드라마 수십 편 가볍게 쓰겠지만 그걸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르다. 닥친 기쁨과 슬픔, 행운과 불행을 이렇게 일일이 기억하고 담아두니 예민할밖에. 그러나 그런 성벽이 그를 시로 이끌지 않았을까. 눈높이에 영근 매화 가지를 모조리 분지르는 불안, 눈을 다쳐 나뒹구는 사람을 오래 잊지 못해 왜 꽃을 꺾냐는 힐난에도 묵묵히, 기어이 저지르고야 마는. 한 번 그어진 상처는 아물 겨를도 없이 매일 밤 들여다보고 궁리하니 시도 글도 그의 모든 언어가 이다지도 무거울밖에.
나는 바람도 빗방울도 심지어 사람 한 채의 무게도 쉬이 지나갈 수 있는 얇고 허술한 천 하나를 가만히 들고 있다. 그것이 나의 언어, 나의 시. 그래서 이렇게 무거운 성채 앞에선 저절로 항복하게 된다. 고집스럽게 밤을 밝히며 단어 하나 쉼표 마침표에 일일이 궁리하며 눈이 붉었을 사람을 생각하면 앉음새를 돌보게 된다. 쉬이 꺾이고 쉬이 상하며 쉬이 탈 나는 언어를 가지고 이렇게 튼튼한 집을 지었으니 감탄스럽다. 부디 마음 다치지 않고 평화롭기를. 결벽하고 엄격한 장인이 살아가기엔 세상이 녹록지 아니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