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가 파랑새 모무와 차원을 떠돌다 닿은 한 세계의 풍경에 마음이 끌렸다. 그건 모든 생명이 완전한 진화에 성공한 세계. 육체를 버리고 원자 레벨로 회귀한 개체들은 그 자체로 완전하여 외롭지 않았다. 세계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귀를 기울이고 오래 기다려야 겨우, 바람이 모래를 데려가는 소리만 들릴 뿐. 그건 내가 꿈꾸는 세계였지만
이야기는 결국 몸으로 돌아온다. 소용돌이치는 감정으로.
비극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비극을 잊을 수도 있었다. 이바와 모무는 수많은 차원을 떠돌았으니까. 마음에 드는 차원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은 친구들이며, 안갯속에 갇힌 엄마며, 공포와 분노를 퍼뜨리는 검은 마법사 따윈 잊고. 세상에 그런 고통 하나 둘 없는 존재 있으랴 중얼거리며. 서로의 심장에 심장을 얽고 온기를 나누며 사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바는 은발의 아이. 이바에게 깃든 가장 강렬한 감정은 정당한 분노였고, 칼을 휘두르는 대신 칼을 맞음으로써 모든 걸 단죄하고 용서했다.
은빛은 특별하니까. 그건 달의 빛. 밤을 가르는 광채다.
차원의 틈새에서 언제 꺼질지 모르는 땅을 불완전하게 디디며 거짓 태양에 말라가는 삶도 나는 좋았겠지만
이바는 사랑스럽고 용감한 아이였으니 결국 모든 것은 부서지면서 회복되리라.
그건 꽃 같기도 하고 물 위를 떠도는 달빛 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그림 위에 희고 검은 글씨가 마치 노래처럼 흩날렸다.
조약돌처럼 주워서 손안에 넣고 굴리며, 때로는 발바닥으로 지그시 눌러보기도 하며
나도 이바의 머리카락에 숨어 긴 여행을 한 것도 같다.
아름다운 이바, 나도 너를 기억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