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에게 한 달을 주고 매일을 기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쓸까. 매일 아침의 날씨나 그날 처음 먹은 음식을 기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 달을 끌 수는 없지. 시인은 눈이 멀 때까지 계속 쓰는 자이니. 그의 세계는 글자로 이루어진 집이니.
우선 그는 시를 쓴다. 그리고 쓴 시를 어루만지며 곰곰이 들여다본다.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냐는 듯이. 무엇을 발견해야만 하지 않겠냐는 듯이. 조각난 몸의 윤곽을, 부서진 기억의 언저리를, 그것들이 탁류처럼 흘러가는 세계를, 그 세계가 번져서 이루는 형상을. 그리고 또 골똘해진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까. 삶이라고 하니 왠지 마음이 움츠러들고 생활이라고 부르자니 석연치 않고 타인이라고 하자니 비겁하게 느껴지고 자기 자신이라고 중얼거리니 슬프다. 한없이, 슬프다.
7월은 비가 내리는 계절. 물이 가득 찬 양동이에 빗물 한 방울 떨어지면 찰랑, 넘치듯이 가득 찬 습기가 이마를 적시고 사라지는 계절. 요란하게 땅을 적시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는 여름의 복판에서 시인은 그렇게 시를 쓰고 시를 들여다보고 또 쓴다. 시의 벽에 새긴 기록을, 뼈에 박아 넣은 탁본을.
그것을 심상하게 고백한다.
미친 노인이 되기 위해 살아간다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지리멸렬한 삶을 놓지 않고 살고 쓰고 또 쓰는 그가 믿음직했다.
어느 기사에서 읽었는데, 쉬고 싶다면 그냥 쓰레기처럼 쉬란다. 뼈가 없는 것처럼 누워서 핸드폰을 보든,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하루 종일 잠을 자든, 내가 원하는 대로 내키는 대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라는 충고를 듣지 말란다. 그것은 중세 시절 귀족의 여가생활이었다고. 일을 하지 않던 옛 귀족이 시간을 부수는 방식을 새벽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도 쉬지 못하는 21세기의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그걸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문학은 지금 여기의 욕망에게 대체 무엇을 말해야 하느냐고. 산산이 부서진, 가루처럼 흩날리는 미세 욕망의 시대에 과연 문학은, 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매일 묻고 또 매일 다르게 답할 것이다. 아침에 밥 한 술을 뜨면서 심상하게 묻고 입술을 꾹 다물 것이다. 어금니 사이로 부서지는 밥알은 찰지고 달겠지. 그것이 생활, 눈을 감았다 뜨면 닥쳐오는 오늘. 오늘의 사방 벽에 시인은 무엇을 기록해야 하는가. 그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지만.
매일 묻고 다르게 답하고 영 엉뚱한 것을 쓰면서 미친 노인이 되어 가는 것.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를 알고 나를 모르고 나를 놓고 다시 움켜쥐는 것. 그렇게 살았던 어느 여름의 매일을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피어오르는 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