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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임 Sep 02. 2024

니콜 크라우스, 어두운 숲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책의 제목인 <어두운 숲>은 단테의 지옥편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길을 반쯤 지났을 때 나는 어두운 숲에서 헤매고 있었네 똑바로 난 길을 잃어버렸기에. 


평생 확고한 신념으로 거대한 부를 쌓은 변호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며 자신이 누구인지 답을 찾고자 한다. 그것을 모르겠기에 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부모님을 기념하는 의자를 만들고 방랑하던 조상들의 옛 터인 이스라엘에 돌아와 성경 속 이름에게서 자신의 근원에 닿고자 한다. 그리고 숲을 조성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으로. 그 숲은 울창하고 어두울 것이다. 그렇게 모든 재산을 내어주고 그는 홀연히 사라진다. 


세계적인 작품을 썼지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텔아비브의 힐턴 호텔로 향한다. 거기서 카프카에 대한 숨겨진 자료를 주겠다는 남자를 만나 사막으로 추방된다. 굉장히 기묘한 일이다. 미국 국적이며 그녀 말대로 세계적인 작품을 써서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되는 소설가를 며칠 동안이나 사막에 유폐한다는 것이. 그녀의 말대로 그 군인들은 이야기의 파편만을 알아서 그녀를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유실되어 사막 속에서 실종된다.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개와 함께. 그리고 사막에서 돌아온다. 그녀를 사막에 가둔 계기가 된 사람은 찾을 수 없다. 그런 이름의 사람은 없다. 그가 손에 꼭 쥐고 사라진 가죽 가방 속에는 정말 카프카의 숨겨진 자료들이 들어 있을까. 소설가는 사막 속에서 흩어지고 돌아와서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변호사의 이야기보다 나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더 끌렸다. 그녀의 사막은 예수가 사막에서 보낸 사십 일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고 보니 변호사가 마지막까지 간직하다가 건물 수위에게 부탁해 팔려고 했던 그림은 수태고지다. 수위는 어이없게도 매를 보고 환호하다가 그림을 잃어버린다. 소설가는 사막에서 알 수 없는 병을 품고 돌아와 죽음을 넘어서고 변호사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는 그림을 잃고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는 어두운 숲에 잠긴다. 이 귀환과 실종을 모두 새로운 탄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게 새로 태어나면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똑바로 난 길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일까. 


인간의 생활이란 텍스트보다 복잡하여 단추 하나까지 버리고 숲으로 사라지는 행운은 좀처럼 만날 수 없겠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텍스트로라도 만나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사라질 기회조차 없이 흩어지기 전에. 태어나기 전에. 그렇게라도 울창하고 어두운 숲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들의 뿌리가 잠겨 있는, 깊고 끈적한 無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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