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by 별이언니

유튜브 채널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스스로를 인본주의자라 칭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한다. 가치관이나 윤리관, 종교관, 도덕적인 선입견에 묶여 '아니, 나는 아닌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내려놓고 인간의 주변부로 사고의 중심을 옮기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목을 긋는 일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 행성을 그토록 폭력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개체로서의 인간은 이 흐름을 바꿀 수 없다.


유발 하라리의 이 명서를 다시 읽었다. 처음에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마치 타임리프를 한 것처럼 그때와 지금의 세상이 확연히 달라져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종종 얼굴을 붉히며 토론의 원탁에 올리던 주제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더 큰 문제들이 서프라이즈 상자처럼 뚜껑을 열고 튀어나와 이제 우리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파편적인 문제들에 겨우 매달리고 있다. 세상은 섬뜩할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지만 무섭도록 분리되고 있다.


생각을 가공하여 언어로 장식하여 타인에게 전달하는 능력, 단순 정보가 아니라 의지를 머금은 말을 다른 개체에게 전파하고 그것으로 집단을 이룰 수 있는 능력, 호모 사피엔스는 그 능력으로 엄니가 날카로운 맹수와 큰 날개로 활공하는 맹금류, 바다를 자유롭게 건너는 해상 동물들을 모두 제치고 행성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주 오래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정착하는 곳마다 다른 생물들은 멸종했다. 쉽게 찢기는 피부, 멀리 보지도 못하는 눈, 둔한 코와 귀를 갖고도 놀랍게도 끝까지 살아남았고, 심지어 다른 호모족들마저 모조리 절멸시켰다. 수렵하고 채집하던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을 이루고 종교혁명을 이루고 산업혁명을 이루고 이제 생물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처음은 언제였을까. 어느 호모 사피엔스가 다 먹고 난 열매의 씨앗을 땅에 심는 것을 생각했을까. 동굴 앞 먼지 날리는 땅이 황금빛 밀밭으로 바뀌는 꿈을 꾸었을까. 하늘의 별에 마음을 빼앗기고 지구의 어느 생물도 궁금해하지 않고 묵묵히 맞이한 매일을 스스로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고 마음먹었을까. 나는 읽는 내내 사피엔스에게 전율했다. 그들의 교활함에, 그들의 저돌적인 면에, 그들의 속도에. 2025년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속도를 과연 제어할 수 있을까. 이미 달리기 시작한 두 다리가 멈추거나 방향을 틀거나 혹은 느려질 수 있을까. 무서운 관성으로 우리는 어딘가로 튀어가고 있는데 그 끝은 과연 어떤 풍경일까. 아니 끝이 나기는 할까.


평온하게 언젠가 인간은 멸종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아름답다. 향후 오십 년 내에 죽지 않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호모 사피엔스는 끈질기게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행성이 끓어올라 거대한 수프 냄비가 되면 우주의 먼지에라도 올라타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했다. 이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무엇이 되었든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의지를 가공하여 전달해야겠지. 책은 독자에게 묻고 있다. 자, 이 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의 가장 마지막 날에 다다른 하나의 사피엔스여,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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