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코스모스

by 별이언니

인간의 감각은 둔하여 보고 듣고 만지는 것만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 그러나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르다. 여전히 생물은 스스로 감각하지 못하는 것들은 진심으로 믿지 못한다. 실감하지 못한다.



머리를 감고 김이 자욱한 욕실에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사방을 가득 채운 물방울들이 서서히 벽과 거울에 달라붙으며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이 모습과는 아주 달랐겠지만 최초의 별들도 물방울처럼 허공에 맺혔으리라. 나는 지금 한 우주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주의 바깥 어딘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물끄러미 별들의 탄생을 지켜보았을 신이라는 존재도 있었을까. 나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과학서라는 책을 읽고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내가 허공이라고 인지하는 공간은 사실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만져서 인지하는 모든 것들은 아주 작은 것들의 헐거운 고리다. 어떻게 만지면 가볍게 부서지는 것. 크래커 같은 지구에 묽은 잼처럼 얹혀있는 나.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지구를 보호하고 있는 얇은 대기가 날아가 버리면 우리는 순식간에 질식할 것이다. 광막하고 차갑고 무감정한 우주. 그러나 우주를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빛나고 그럼에도 심장은 두근거린다. 그것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며, 그것이 이 모순투성이 존재가 그나마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빛나는 감정으로 우주를 느낀다. 우리는 우주에 선율을 보낸다.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연약한 생명체의 목소리를. 태양계를 빠져나가는 조그만 우주선에는 우리의 꿈이 실려있다. 카메라가 망가질 위험에도 몸을 다시 뒤로 돌려 태양계 모든 행성들을, 공전 궤도 위 창백한 푸른 점을 두 눈에 담은 우리는 모험자이며 여행자이다. 별을 이어 그림을 그리고 거기 이야기를 짓는 인간의 낭만이 어쩌면 단순한 물질의 고리일지도 모를 우주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사랑이다. 먼지가 불타오르는 순간보다 짧을 인간의 시간. 유한한 삶을 사는 존재가 다음 세대에게 목숨을 건네며 꾸는 꿈. 나비가 저녁 하늘로 번지는 시간. 빗방울이 대기에 스미는 시간. 흙냄새가 퍼지는 시간. 우리가 꾸는 꿈. 낮잠에 든 얼굴이 잠시 햇빛에 환해지는 순간의 기록. 나는 가장 아름답고 간절한 꿈의 기록을 읽었다. 그의 시간은 끝났지만 그의 꿈은 이어진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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