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찬, 구름기 + 투암기

by 별이언니

2050년에는 어쩌면 죽지 않는 인간이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읽었다. 예로부터 인간은 불멸의 꿈을 꾸었고 꿈은 멈추지 않으니 어딘가에서는 막대한 돈을 퍼부어 그런 연구도 계속하고 있는 걸지도. 세포의 시간을 되돌리는 연구로 이루어지기만 하면 노화도 질병도 없는 세상이 열린다고 한다. 인간의 죽음은 오로지 사고,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외상으로만 발생할 거라고. 좀 무섭기도 하고 실감이 나지 않기도 한다. 죽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일까 생각한다. 모르지, 죽음이 아직 내게 너무 멀리 있어서 (혹은 그렇다고 여겨서. 한 치 앞도 모르고 1센티 속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지난 몇 년간 가까운 이의 죽음이 나를 끌어안았다가 멀어졌다. 끌어안겨있을 때도 나의 슬픔은 묘했다. 나의 우울은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점을 보러 가면 늘 언젠가는 편안해진다고 했다. 언젠가 이 모든 감정이 사라지면, 무언가 느끼기조차 버거운 무감한 통증이 사라지면 편안해지겠지, 생각했다. 나에게 늘 죽음은 억지로 당길 수는 없지만 언젠가 찾아올 구원 같은 것이었고 가까운 죽음들도 구원처럼 느껴졌다. 오래 아프고 오래 묶어 있었으니까. 지상에서 발을 떼는 순간 자유로워지리라고. 아픔은 오로지 살아있기 때문에 나를 잠식하는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남동생의 꿈에는 오셔서 네 누나를 잘 지켜보라고 하셨다는데 정작 내 꿈에는 기척도 내지 않으신다. 주변에 잠깐이라도 머물렀다는 느낌도 없다. 서운하셨을까. 사실은 많이 그립고 아팠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닌, 예고된 죽음을 맞아야 하는 사람의 하루는 어떨까.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까지의 순간순간은. 창밖으로 달라지는 계절을 보는 기분은.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tv 스크린 속 다음 시즌에 계속,이라는 멘트를 보는 마음은. 그는 소설가였기에 그 매일 매 순간을 기록하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인간도 죽음 앞에서 완전하게 담대할 수는 없다. 최선을 다해 의연해지려고 노력할 뿐. 문장과 단어에 눌러 담은 마음이 가득해서 그걸 따라가는 나의 마음도 최선을 다해 의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계는 감정이 없다. 섭리에 따라 움직일 뿐. 그러나 세계에 잠깐 머물렀던 생명들은 찬란하게 빛나서 우리는 무엇으로든 기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내에 대하여는 단 한 문장도 적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모든 것에 의연한 척할 수 있어도 사랑 앞에서는 그럴 수 없다. 사랑은 우리를 아름다운 겁쟁이로 만든다.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투암기 말미에 수록된 아내의 글은 아주 느리고 긴 삶을 예고한다. 그녀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지 완전한 타인인 나는 짐작할 수 없다. 글은 담담하지만 종이 밖에는 도통 그치지 않는 눈물이 장마를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죽음을 고독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 겨울이 오면 아내는 언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대고 다소 뜨거웠던 어느 체온을 떠올릴 것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문장을 남겨 우리가 그를 기억하도록 했다. 살아있었던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세계는 빛나게 눌어붙은 생명의 흉터로 가득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으로 불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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