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여행의 이유>
길을 걷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뒤돌아볼 때가 있다. 비슷한 온도, 비슷한 색깔, 비슷한 냄새. 혹은 그리운 빛. 무엇이든.
좋은 의미로 '훌륭한 스토리텔러'라고 부르고 싶은 김영하의 문장은 단단하다. 바람과 햇빛이 천천히 스미고 빗방울을 마시는, 목질의 단단함이다. 나무에 귀를 대면 물관을 따라 나무의 수액이 도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 나무가 거칠고 딱딱한 껍질을 지니기까지의 시간이 고스란하다. 소설과는 다른, 하지만 여전히 강박적으로 단정한 문장들에 얼굴을 가져다대니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자꾸 어딘가로 돌아가려는 듯싶지만 결국 다 다른 곳으로 돌아오고 떠나는, 회귀점이 미묘하게 어긋난 시간축이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니,라고 물으면 늘 호텔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 그는 호텔에서 일평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겠지만 - 사람을 읽었다. 외국에 나가면 귀머거리가 되는 느낌이 좋았다. 이방인이 되는 기분을 사랑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또 읽었다. 그와 나의 여행의 이유는 어느 지점에서는 닮았다.
그리고 다르다. 나는 동행이 있는 여행을 하지 않으니. 나의 여행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일이다. 고립되는 일, 격리되는 일. 여행을 떠나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며 '승인'되었다는 기분을 갖는 대신, '분실'될 당위성을 찾는 일이 나의 여행. 나는 여전히 나를 잃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으나 나의 여행은 기묘하게도 늘 나에게 아름다운 돌멩이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준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지루한 어느 날 저녁, 꺼내어 지문이 생기도록 어루만지는 돌멩이. 어떤 시간에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색을 입히며 나는 나부끼는 기억을 하나 또 얻는다. 그러므로 잃기 위해 떠난 나의 여행은 나의 몸이 이 땅에서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아둔다. 자꾸만 지워지는 몸의 윤곽을 새로 그린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지인에게 말하다 문득 눈물을 흘릴 뻔했다.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나서서 늘 헷갈리는 공항버스 정류장을 찾을 때, 나의 이마에 와 닿는 '다녀왔니'라는 바람. 떠나는 일만큼 돌아오는 일을 사랑했다. 잘 돌아왔다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돌아오는 일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 여행의 이유에 '잘 돌아오는 것'이라는 항목을 덧붙인다. 그에게 여행이 살고 쓴다는 인생의 일부였다면 나에게 여행은 살고 머무른다는 이유를 계속 갱신하는 것. 그 시간이 결국 무엇이든 여행은 살아감이다. 생활자의 감각과 여행자의 감각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타인의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눈빛이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결국 달라지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또 새롭게 쓰이고 낡은 몸에 새로운 흉 하나를 만들며 단단해지고 깊어진다.
운동화를 새로 샀다. 떠날 준비라면 언제든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