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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시녀이야기>

by 별이언니

기이하게 뒤틀린 이야기지만, 분명 환상의 어느 영역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 .

과연 그런가.

요즘 읽는 소설들은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애나 번스의 <밀크맨>도,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도.

지금 이름 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증상도 잠복기도 뒤죽박죽인 병으로 한해의 절반이 묶여버렸다. 전세계가, 심지어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가던 원주민들에게도 병이 돌고 있다고 한다.

매일 뉴스에서는 무시무시한 숫자를 침울하게 알려주는 앵커가 있다. 어느덧 행정명령과 복장검열(마스크)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병이 무서운 것은 치료제가 마땅히 없어 기약없는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는 것, 잠깐 스치기만 해도 전염되는 위험도 있지만 뒤틀린 인간을 여지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병이 길어지면서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이 세계의 표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주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는 숨이 막힌다, 고 호소하다가 길 위에서 죽었다. 백인경찰이 그의 몸을 가혹하게 짓누르고 있어서였다. 그는 숨이 막히다고 호소했지만 그의 호소는 그를 억압하는 자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미국의 몇몇 도시는 지금 불타고 있다.

자- 사령관은 오브프레드에게 말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었노라고, 그러나 그 사회가 모두에게 좋은 사회는 되지 않노라고. 손해보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고 그는 파렴치하게 중얼거렸다.

사령관의 파렴치, 길리우드라는 폭력 앞에서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함을 본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죽여 장벽에 걸고 여성을 씨받이로 쓰는 국가가 당연한 듯 버젓이 있다. 생각을 없애기 위해 여성에게는 글자가 허용되지 않고, 그녀가 아내인가 딸인가 하녀인가 시녀인가에 따라 다른 색을 부여해 구별하는 사회. 나는 내내 궁금했다. 오브프레드의 어머니 시절도 아니고, 그녀 자신이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었던 '지금 여기의 삶'이 그렇게 급격하게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거기 거대한 폭력이 가담했으리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나는 종교와 같은 것이라고는 여길 수 없었다. 탄압의 주요한 도구로 성전이 활용되었을 뿐 - 그 정도의 미친 광기에 국가 차원으로 동조했을리는 없지 않은가.

사령관은 오브프레드에게 말했다. 남자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고, 그래서 회복해야만 했다고.

무엇을?

길리어드의 명분은 제로 미만으로 떨어진 출산율을 회복하는 것 - 약물과 방사능으로 병든 육체 대신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녀'들을 선별해 성경에서 말하는대로 자손을 번영하고자 한다는 것, 이지만 시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령관' 뿐이다. 아이를 낳기 위한 행위는 성스러운 것이므로 거기엔 어떠한 쾌락도 깃들어서는 안되지만 사령관들은 버젓이 이세벨의 집으로 가 오입질을 즐긴다. 작가는 이 기묘하게 뒤틀린 지옥을 통해 무엇을 고발하고 싶었을까.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이데올로기 - 그러한 사상이 불러들이는 폭력 - 폭력의 연쇄가 소환할지도 모르는 '심연의 인간'. 그 심연은 이다지도 찌질한, 근시안적인, 자기향락적인 동기로 강림한다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지옥을 소환하는데 사실 대단한 준비가 필요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스스로를 놓아버릴 때 - 오브프레드가 신에게 매달리며 기도하듯 나를 놓고 무엇도 원하지 않겠노라고 애원하듯이 - 지옥은 당연하게 지금 여기로 온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병은 우리를 뒤틀어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악한 감정들을 꺼내놓기 쉽게 한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인간 외의 생물은 고통을 내색하지 않는다. 죽음을 미리 알고 죽을 장소를 찾아 머리를 괴고 기다린다. 인간이 아닌 숨붙이들은 생을 자기 힘으로 올바르게 닫을 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므로, 고통 앞에 이토록 나약하다.

이 이야기의 어두운 구멍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우리는 지옥의 수태 앞에 다다랐는지도 모른다.

34년 전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에도 길리어드는 유효하다. 우리는 유효한 이야기가 주는 경고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스스로를 놓지 않기 위해 기도 대신 연대를, 복종 대신 자발적인 사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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